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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다희 Oct 21. 2023

잘하는 사람이 되려고
퇴사를 고민하다

퇴근길에 내가 퇴사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퇴사를 고민하게 된 원인은 일을 더 잘하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었다. 내게 ‘일을 더 잘하고 싶다’라는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아무개님, 일 참 잘해요.라고 상사와 동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인정을 얻으면 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일까? 어려운 일을 척척 해내고 문제가 생겼을 때 탁월한 능력으로 위기를 해결해 나가고 조직 목표를 달성하고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는 사람이 일을 잘하는 사람일까? 이와 같은 사람은 분명 일 잘하는 사람이 맞다. 일을 시키는 사람 편에 서서 보면 말이다.  

    

그러나, 일을 하는 사람 입장이라면 꼭 그렇게만 볼 수 없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굳건히 믿었던 회사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이라는 굳건한 신념이 어느 순간 낭창거리는 유리벽으로 변해 버렸다. '회사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이다'는 이 표어는 한 때 내가 존경하고 그녀처럼 일해서 인정받고 싶은 회사 선배가 해준 말이다. 그녀의 말을 나의 커리어 성장 가이드로 여기며 일에 매달렸는데, 회사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이 되는 경우는 소수에게만 해당된다는 것을 뒤늦게 깨우친 것이다.


  



 나는 회사에 열과 성의를 다했다. 나의 30대를 되뇌어 보면, 열심히 일하는 모습만 떠오른다. ‘나를 맘껏 부려주세요. 전 충성을 다할 각오가 되어있어요.’ 모드를 상시 켜놓고 있었다. 이 모습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렇게 일하는 선배를 찾으면 그대로 따라 하려고 했고 배우려고 했다. 그러다 보면 나의 열정과 애씀이 하나둘씩 차곡차곡 쌓이게 되고, 언젠가 큰 사람이 될 줄 알았다.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과 자리, 억대 연봉과 화려한 타이틀로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때가 나에게도 주어질 줄 알았다.



그럴 줄 알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회사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13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의 몫은 회사가 가는 방향을 묵묵히 지켜보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연차가 쌓이면서 늘어가는 업무 경험과 실적을 잘 축적하고 소화해 낸다면 나도 어느새 유능한 동료가 되어 있으리라고 상상했던 거다. 성실한 태도와 무슨 일이든 잘 해내고 마는 책임감에는 회사와 나 사이에 이견이 없다. 큰 오해를 산 것은 ‘유능함’에 대한 해석이었다.     


유능한 사원, 유능한 팀장, 유능한 임원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는 성실과 책임감뿐만 아니라 사내 정치를 잘하고 타이밍이 좋은 능력을 갖춰야 했다. 오로지 일로서 승부한다는 정의 사도와 같은 정신은 기민한 능력자들에게 매번 밀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사내 정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인지를 터득하기까지 12년이나 걸렸다.  


상사와의 갈등과 그 속에서 모멸감을 느끼는 과정 중에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굴욕과 수치심, 자책과 원망을 오고 가며 나를 괴롭혔던 시간들은 엄청 쓴 약을 복용했던 기간이다. 쓴 약을 복용한 효과는 있었다. 내가 믿고 있었던 업무방식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점과 상사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해서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려고 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12년 동안 내 안에 각인된 관습과 굳어진 생각이 좀처럼 유연해지지 못했다. 


어렵게 옮긴 팀에서 2년도 채 다 채우지 못하고 다시 퇴사를 꿈꾸는 나로 되돌아갔다. 유예기간이 고작 1년이었구나를 느끼며 무기력함과 의욕상실로 매일 버텼다. 내 안에 분명히 내재화된 타성과 유연해지지 못한 사고방식의 문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를 잃게 하는 곳은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다. 더 괴롭고 매몰되기 전에 벗어나는 게 맞다. 


안정된 직장 울타리에서 벗어난다고 하면 다들 두 손 들고 말린다. 우리 대부분은 ‘안정’이라는 두 글자에 구속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따져 봐야 할 것은 안정이라는 명목하에 내 발목을 내가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처음에는 발목을 잡혔는데, 곧 무릎, 허리, 팔꿈치, 어깨, 손목까지 잡히게 되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처럼 남들이 부러워하는 회사를 다니고 두둑한 월급도 더 이상 나를 버티게 해주는 효력을 발하지 못하는 지경이 된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잘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퇴사를 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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