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 인생에서 잠깐만! 이게 무슨 일인가, 하며 급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몇 번이나 있을지는 사람마다 다르고, 이것이 브레이크가 걸린 것인지 아예 시동이 꺼진 것인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비슷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다들 제각각인 인생을 그려나가는 것일 테니까.
여름을 앞둔 봄, 안개가 자욱하게 낀 고속도로를 달렸다.
속도를 시속 40km까지 줄이고, 가시성이 최악인 상황에서 뒤 차와의 안전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비상등을 켜고 달렸다. 운전대를 잡은 양손에 힘을 세게 주는 바람에 어깨는 반쯤 접힌 상태다. 어느 지점까지 이 속도로 달려야 할까? 어디쯤까지 가면 안개가 걷힐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라는 말을 머리로는 믿는다. 그러나 그 숫자를 인지할 때마다 (알아챌 때마다) 속으로 뜨악한다. 법 개정으로 우리나라도 만으로 나이를 셀 수 있게 되었으니 시간을 되돌린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이건 나만 얻게 된 특혜가 아니라 전 국민이 받은 해택이다. 나뿐 아니라 전 국민이 1~2년 정도 다 같이 젊어진 셈이다. 덕분에 2023년 내 나이는 마흔 중반에서 초반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줄어도 앞자리는 굳건한 4라는 게 아쉽더라도, 그렇다고 30대 후반으로 돌아가 숫자 4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과 우울감을 느끼는 것보다는 40대 초반에서 얻는 '출발', '다시 시작'이라는 어감이 훨씬 낫다.
내가 불혹이라니...
불혹은 인생의 긴축에서 소싯적 전화, 즉 큰 변화를 일구는 시기라고 한다. 몇 해 전 대형 서점에 갔다가 평대 한 코너가 마흔에 관한 책들로 꾸려진 것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나만 헤매고 있는 게 아니었구나, 함께 나누는 고통의 무게는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했던가. 나를 위해 준비한 코너처럼 묘한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선뜻 그 평대에 다가가는 게 망설였다. 40대인 게 티 날 것 같아서. 마흔에 관한 서적들이 유독 많이 출간되는 것만 봐도 이 나이대 사람들에게 인생의 전환기를 겪게 되는 시점이라는 게 예측된다. 그러나 문제는 시련을 겪어 봐야 이런 것들이 보인다는 것이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40대 미혼인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이 앞자리가 4로 바뀌고 나서는 주변에서 결혼 얘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적당히 에두를 필요가 없어진 점은 좋은데, 철 지난 대상 혹은 하자 있는 물건처럼 취급받는 암묵적인 분위기에 때로는 섭섭함을 느끼기도 하니 참 아이러니 하다. 40대 미혼 여자의 자격지심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불혹을 넘긴 미혼 여성에 대한 진부한 낙인을 모두 부인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나로 살아갈 것이고 나를 지키기 위한 유일한 존재는 ‘나’이므로 나는 나를 지켜야 한다.
20대, 30대 보다, 아니 10대 때도 이보다 더 힘들지 않았다. 망각의 동물답게, 나는 지금 40대를 맞이 지금의 인생 시점이 가장 어렵고 힘들다. 그러니 말하지 아니하지 않을 수밖에.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진지하게 다시 고민하게 된 것부터 난감했다. 여태껏 차곡차곡 쌓아온 성곽이 와르르 무너진 것처럼 나의 정신적 회로는 불통이 되어버렸다.
나는 이렇게 40대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