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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다희 Oct 21. 2023

청청벽력 같은 소식에도
반가웠던 이유

 

마침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던 중이라 청청벽력 같은 소식을 들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검진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찾은 산부인과에서 자궁 안에 있던 용종이 1.8cm로 커졌다는 검사 소견을 들었다. 내 자궁 안에 용종이라니, 여성 누구나 한 번쯤은 생기는 용종이라 처음에는 내 자궁도 늙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3개월의 시간 간격을 두고 재검진을 한 결과, 의사 선생님은 0.4cm 정도였던 용종이 1.8cm로 커졌다며 시무룩한 표정으로 초음파 모니터 결과를 내게 보여줬다. 나는 이 결과가 얼마나 좋지 않은 경과인지 알 수 없었다. 까만 배경에 초음파가 투과하여 희끄무레 보이는 사진만 바라보고만 있는데, 의사 선생님은 곧장 내게 수술을 권했다. 이 날로부터 3주 뒤로 수술날짜를 잡았다.


태어나서 한 번도 수술대에 올라간 적 없었던 나는 첫 수술 소식에 의외로 꿋꿋했다. 의사 선생님께 "간단한 수술이라고 말씀하셨으니 너무 긴장할 필요 없죠?"라며 질문을 던지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진료실을 나왔다. 수술 전 필요한 검사 몇 가지를 받고 병원을 빠져나오는데 그때부터 내게 닥친 현실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결정



나의 질병은 아무런 고통을 주지 않았다. 신경세포가 없는 장기, 근육으로만 둘러싸인 장기 안에 불필요한 근육 조직이 자란 것이다. 의사 선생님은 이 조직이 점점 커진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고 앞으로 일을 걱정하셨다. 그러니 더 큰 질병으로 번지기 전에 예방 차원에서 수술을 하자고 했다. 시술에 가까울 정도로 간단한 수술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의사 선생님은 말씀하셨지만, 처음으로 받는 수술이라고 하니 혹시라도 내가 많이 놀랐을까 봐 수술 과정과 전후 몸관리에 대해 상세하게 덧붙여 주셨다.


그녀의 따뜻하고 친절한 설명은 오히려 나를 반성하게 했다. 건강하게 나를 지키지 못했다는 결과 일 테니까. 수술을 받는 것에 충격받을 게 아니라, 이 계기로 몸과 마음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나를 되돌아보게 해 주었다. 수술 후에도 충분히 쉬기로 결정했다.     



후련한 마음


나에게 쉼, 멈춤이 시급하다는 신호를 여러 번 받았음에도 나는 그때마다 외면하고 무시했다. 그러고 보니 몇 번 무너질 뻔 한 순간도 있었다. 일에 대한 흥미와 열정이 예전과 많이 달라져있었다. 돌이켜 보면 내가 믿고 있었던 의미의 그물망이 풀어지고 있었음에도 꽤 오랜 시간 방치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물망을 바뀌야 하는 시점에, 삭은 그물망만 계속 쥐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병가를 내겠다고 팀장에게 말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했다. 한 달 동안 쉬겠다는 말을 하기 전까지도 나는 이것저것을 따졌다. 나의 휴가가 일에 어떤 지장을 주지는 않을지, 동료에게 나의 일을 대신 떠맡기게 하는 것은 아닌지, 갑작스러운 병가 소식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는 것은 아닌지 등등... 아무리 걱정해 봤자 내가 붙잡을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생각들로 나를 괴롭혔다. 이것이야 말로 진짜 고쳐야 할 병이다. 나 아닌 주변환경에 지나치게 신경 쓰고 휘둘리는, 이 마음의 병에도 치료받은 시간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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