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다희 Oct 21. 2023

나를 만나고 싶어서
상담을 받다

비행기를 타는 게 설렘보다 걱정부터 앞서게 되고, 사람들이 많거나, 몰리는 엘리베이터와 같은 닫힌 공간을 피하는 지경까지 이르자,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걸 깨닫게 됐다. 어렸을 때 기억으로는 재미 삼아서 장롱 안이나 소파와 벽 사이 틈으로 일부러 숨곤 했는데, 이때를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갑갑함이 밀려왔다.     


‘좁다’라는 어감이 하루아침에 ‘안락함’에서 ‘숨 막힘’으로 바뀐 데에  뚜렷하게 영향 미칠 정도로 크게 겪은 불의의 사고나 사건은 없었다. 다만 불편한 느낌을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된 시점이 언제였는지 더듬어보자면, 아마도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던 때쯤이었던 것 같다. 인구 밀도가 높은 서울을 벗어나 넓고 큰 미국의 서부 대륙에서 7년간 있었다. 7년이란 세월은 뭐든지 빨리 움직이고, 앞으로 전진만을 강요하던 한국 스타일을 잊게 만들었다. 널찍한 대지만큼이나 사람들 간에 부대낄만한 일도 적었다.     


영어는 시원찮으면서 미국 맛은 알아버린, 미국에 잠시 살았던 적이 있는 어설픈 한국인으로 귀국했을 때 전에 없었던 증상까지 덤으로 가져온 것이다. 인터넷 검색으로 자가 진단을 했을 때, 나의 증상은 일종의 폐소공포증이었다. 심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의심할만했다. 


초기에는 그저 ‘답답함이 싫다’ 정도였다. 그런데 문제는 왜 싫고 불편한지를 살펴보지 않고, 증상은 저절로 나아지겠지 하며 외면했던 게 증상을 점점 더 키운 것은 아닌지 뒤늦게 후회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공포감은 점점 커져만 갔고, 때가 됐을 때 마치 시한폭탄처럼 내 안에서 터져버린 것이다. 


말레이시아에서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극도의 불안감을 느낀 뒤로 이후 증상이 자주 나타났다.  온몸 신경계가 곤두서고, 심장 두근거림이 심해지고, 숨이 곧 멈출 것만 같았다. 몸은 계속해서 비상사태 신호를 보내왔다. 숨을 못 쉬면 죽는 건데, 이러다가 죽는 걸까?


겉으로는 피 한 방울도 보이지 않아도 마음속 상처가 점점 깊어지는데 나는 외면만 하고 있었다. 내가 아닌 느낌, 나인데 나를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더 충격을 받았다. 그러다간 죽을지도 몰라! 하고 강한 신호를 느낀 후에 애처롭게 버티고 있는 ‘나’를 보게 된 것이다. 나를 만나야겠다. 나를 알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해야 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나와 맞는 상담사를 찾았다. 상담 선생님만을 고르는 일부터 난관이었다. 어느 상담사를 찾아가야 할지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세상에는 나와 비슷한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됐을까? 이전과 달라진 모습에서 나는 정상범주에서 벗어나게 된 게 아닐까? 하고 불안했었는데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오히려 안심이 되고 이 병을 꼭 고치고 싶어졌다.      


2017년 가을쯤에 만난 선생님과의 상담은 2021년까지 이어졌다. 횟수로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선생님과 내 상태에 따라 상담을 하거나 잠시 쉬어가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낯선 이에게 나의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나의 상담 선생님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나의 민낯을 하나씩 드러내도록 부드럽게 이끌어 주셨다. 안정된 목소리와 온화한 미소 그리고 여유 있는 태도까지 겸비한 선생님은 서재처럼 꾸며진 상담실에서 나를 맞이했다. 푹신하고 널찍한 등받이가 있는 안락의자에 앉아 그녀에게 나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어떤 부분이 힘들어서 상담을 찾게 되셨나요? 하는 질문을 들은 나는 그간 내가 괴롭게 느끼는 증상과 증상들이 발현되는 상황들을 거침없이 토해 냈다. 원래 낯가림이 심한 편은 아니지만 나의 이야기를 이렇게 까지 스스럼없이 말하는 자신이 놀라웠다. 내 안의 울분이 이토록 가득 쌓였다니. 나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뚝뚝 흐르기도 했다. 처음에는 꽃무늬가 그려진 덮개가 씌워진 각 티슈가 의자 바로 옆 작은  탁자 위에 있다는 게 의아했는데, 몇 번의 상담을 해오면서 각 티슈가 왜 의자 바로 옆에 놓여 있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스스로 터득했다. 


한참 동안 내 얘기를 경청해 준 선생님이 건넨 말에 나는 폭풍 같은 눈물샘이 터지고 말았다. 


다희 씨는 참 열심히 사신 분이시네요.


상담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스스로 되돌아보는 데부터 시작됐다. 

이전 06화 마지막 프로젝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