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간 일을 하면서 이번만큼 긴 휴가는 처음이다. 회사를 두 번이나 옮겼지만 그때마다 내게 주어진 이직의 기간은 길어봤자 2주 정도였다. '병가'로 휴가를 써본 것도 처음이었다. 병가를 쓰는 직장인은 어딘가 자기 관리에 부진한 직원처럼 보였다. 그런 까닭에 나는 병가로 휴가를 쓸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13년을 버텼다. 그랬던 내가 병가를 쓰다니. 쓸데없는 오만과 자기기만을 부렸던 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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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가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일하는 날, 휴가를 보내고 복귀하는 시점은 해가 바뀐 새해였다. 그렇다 보니 동료들보다 한 해를 일찍 마무리하게 됐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업무를 정리했다.
리스트업 해 둔 일들을 하나씩 처리할 때마다 시원하게 줄을 그었다. 당분간 일에서 멀어질 것을 생각하니 펜으로 줄 긋는 쾌감이 묘했다. 명목 상 병가인데 마치 여름휴가를 앞둔 사람처럼 엉덩이가 들썩 거렸다. 한 달여간 회사와 거리를 둔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심적 치료가 시작된 모양이다. 다음 날 수술대 위에 누워 있을 내 모습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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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6:30-8:30 a.m.
아침 6시 40분 눈을 떴다. 수술받기 전, 미리 복용해야 하는 약이 있었다. 자궁 안에 내시경 관을 넣어 용종을 제거할 거라서 수술 3시간 전 미리 자궁을 이완시키는 약을 먹으라는 안내 지침이 있었다.
포털사이트 창에 나의 병명과 수술 명을 검색했을 때, 수술받은 것보다 이 약을 먹고 난 후의 고통이 더 무서웠다는 후기가 올라와있었다. 밑이 빠질 듯한 고통과 복통 때문에 괴로웠다는 글을 읽으면서 왠지 나도 그들처럼 약 후유증으로 고생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런 예감은 절대 틀리지 않던데... 그러나 어쩌나. 먹어야지. 알약 두 알을 소량의 물 한 모금과 함께 삼키고 욕실로 가서 샤워를 했다. 10분쯤 걸렸을까? 후다닥 샤워를 하고 수건으로 몸에 있는 물기를 닦는데 아랫배를 쥐어 쬐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뭐지. 이것이 바로 후기로 읽었던 그 고통인가.
생리통처럼 아랫배로 밀려오는 알싸함의 아픔도 급 똥 여파로 호들갑스럽게 덮치는 배아픔과 차원이 달랐다. 심지어 헛구역질도 나온다. 위든 아래든 뭐가 나올 것 같아서 급히 욕실로 뛰어들어갔다.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이 생경한 통증은 뭔가 쏟아 내야 만 할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했다.
고통이 처음에는 5분 주기로 왔다 갔다를 하다가 3분 주기, 1분 주기로 짧아지더니 약 먹은 지 1시간 정도 지나자 잠잠해졌다. 먼저 수술을 받은 선배님들의 후기대로, 나도 약 후유증으로 인한 통증을 더 기억하게 될 것 같다. 그나마 수술 준비 과정부터 상세하게 기록을 남겨 준 선배들의 후기 덕분에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이 통증을 참아 내지 않았나 싶어 블로거님들이 고마웠다.
근육으로 만들어진 내 자궁도 이제 좀 말랑해졌으려나?
병원으로 출발할 시간이 가까워지자 거짓말처럼 아픔이 사라졌다.
거참, 타이밍 한번 기막히게 맞네.
11/24 9:20 a.m.-10:20 a.m.
쿨한 척하며 혼자 수술받고 오겠다고 한 딸이 안쓰러웠는지, 제주도에서 엄마가 올라왔다. 살갑게 굴지 못해도 세상에서 둘도 없는 편인 고여사 님이 병원에 동원해 주셨다. 지하에 주차를 하고 입원 수속을 밟기 위해 병원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엄마가 옆에서 병원 참 좋네~ 무슨 호텔 같다야 하신다. 나도 이병원에 처음 왔을 때 눈이 휘둥그레했었다. 진료 대기를 하면서 검색해 보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 디자인한 건물이었다. 골드 빛의 화사한 엘리베이터만 봐도 병원이 이렇게 까지 럭셔리할 필요가 있는가 싶지만, 호텔 같은 분위기는 되려 이곳을 찾는 환자들에게 덜 위협적으로 느낄 만했다. 편안하고 안심하실 수 있도록 정성 다해 모시겠습니다가 아니라 치료해 드리겠습니다로 느낌으로~
입원 수속을 하고 배정된 2인실로 들어갔다. 병실에서 대기하다가 내 순서가 되면 수술실로 갈 예정이다. 병실은 깔끔하고 시설도 좋았다. 간호사가 준 문진표를 작성하고 원피스 같은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드디어 나 수술받는구나. 복장이 바뀌니 이제야 실감이 되는 모양이다. 그런 와중에 엄마에게 내 모습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긴장을 풀려고 일부러 호들갑을 떨었다. 어디까지나 기록차원에서 환자 복 입은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난 뒤로는 병실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나를 호명할 때까지 할 일이 없다.
병실 베드 옆에 앉아 있던 엄마는 제주도 집 인테리어 때문에 정신이 없다. 계속 이일 저일 얘기를 정신없이 쏟아냈다. 엄마 그 얘기는 나중에 하면 안 될까? 했더니 아무 얘기도 안 하고 있으면 더 긴장된다고 하신다. 나름 설득력 있는 답변이네 하고 답하는 사이, 간호사가 병실 문을 열고 내 이름을 불렀다.
“임다희 환자분! 이제 수술실로 가실게요.~”
“아~~ 네~~”
11/24 9:20 a.m.-12:00 p.m.
터벅터벅 병실 문을 나서니 간호사가 휠체어에 앉힌다. 아픈데도 없고 멀쩡한데 그냥 걸어가도 되는데 휠체어에 앉으라고 하니 머쓱했다. 간호선생님, 저 걸어가면 안 될까요? 주뼛하며 물어봤더니 수술자는 휠체어를 타고 수술실로 이동하는 게 방침이라서 휠체어로 타고 이동해야 한다고 했다. 뭐, 이런 기회로 휠체어도 처음 타보게 됐다.
드디어 통제구역이라 표시된 수술실 앞에 도착했다. 철문을 열고 수술대기실 같은 방으로 들어가는데, 여기서부터는 혼자 들어가야 해서 엄마와 잠시 작별 인사를 나눴다.
“수술 잘 받고 와.”
“응. 이따 봐.”
씩씩하게 대답했지만, 걱정 끼치는 것 같아 엄마한테 미안했다.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침대에 누웠다. 누워서 병실 천장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데, 다른 쪽 문에서 간호사가 들어온다. 이름과 주민번호, 받을 수술명과 수술해 주시는 교수님의 이름을 묻는다. 이어서 수술 캡을 씌어주고, 왼쪽 팔에 주사 바늘을 꽂는다. 두꺼운 바늘이라서 따끔해요~라고 상냥한 음성이 들렸지만, 내 느낌으로는 이것은 따끔 수준이 아니었다. 얼마나 두꺼운 거야, 이쑤시개 두께 정도 되나? 묵직한 느낌이 나의 얇은 피부를 관통해서 팔 안쪽으로 쑥 밀고 들어왔다. 주사 바늘도 꽂으니 나의 긴장도는 점점 올라간다. 마취과 의사가 다가와 안내사항을 알려준다. 기도삽입을 할 거지만 마취를 할 거라서 불편함은 느끼지 못할 거라고 한다. 긴장감이 점점 오르니, 침대에 누운 상태인데도 양쪽 어깨가 말리는 듯했다. 나는 공손한 모드로 네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드디어 나의 차례가 왔구나 싶었다. 또 다른 자동문이 열리고 간호사들이 내 침대를 밀기 시작했다. 드라마에서 보던 흰색 천정과 형광등이 내 눈 위로 지나간다. 고개를 살짝 돌려 벽면 위 쪽을 보니 수술 중이라는 사인이 시야에 들어온다. 처음 들어온 수술방은 온통 초록색이었다. 수술 기구를 제외하고는 수술실 내부 모든 것들 천정, 벽면, 수술실 문 모두 초록색이었다. 드라마에서 봤던 수술 조명이 내 머리 위에 있다. 생각보다 수술 방 크기는 아담하다. 수술 캡을 쓴 간호사 네다섯 분들은 수술 준비로 분주히 움직인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내 수술에 투입이 된다는 것에 사뭇 놀라웠다. 나는 수술대 위로 몸을 옮기고 다시 누웠다. 때마침 수술해 주실 교수님이 웃으면서 수술실 문을 열고 들어오신다. 용종이 크지 않으니 너무 긴장 말라시며 내 어깨를 쓰다듬어주시는데, 그 손길이 너무도 따뜻해서 살짝 울컥할 뻔했다. 그녀의 따뜻한 미소에 긴장했던 마음이 스르륵 녹는다. 양팔이 묶이고 산소마스크가 쓰인다. '심호흡하세요' 하는 말에 천천히 숨을 쉬고 내뱉는다. '마취약 들어갑니다.' 말초신경계 끝에서부터 마취효과가 몸속으로 퍼진다. 찌릿한 느낌이 머릿속을 파고들고는 곧 눈이 감겼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옆에 간호사가 있었다.
내가 눈을 뜨자마자 한 말은, 선생님 저 배 아파요~ 네 환자분. 배 좀 아프실 거예요. 덤덤하게 말하고는 간호사는 내 곁을 떠났다. 몽롱한 기운,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내가 있는 곳은 어딘가를 떠올리며, 아 수술 끝나고 나는 다시 눈을 떴구나 하며 정신이 돌아왔다. 전신 마취에서 깨어나 다시 눈을 떴다는 것만으로도 순간 삶의 희열이 느껴졌다. 내가 살았구나 하는 느낌. 수술을 끝났고 이제 남은 건 수술 후 배아픔을 견디는 것이다. 같은 자세로 누워있어서 그런 건지 허리도 아프다. 다리를 살짝 움직였는데 다른 통증은 없다. 배가 덜 아플까 싶어서 다리를 살짝 구부려본다. 강도 센 생리통이 아랫배를 감싼다. 속으로 배 아프다고 혼자 외친다. 참기에는 아프고 아프다고 울부짖기에는 애매한 강도이다. 수술 후 깨어남과 호흡과 맥박이 정상으로 돌아왔는지 정신이 돌아온 지 15분 정도 지나자 간호사가 다가와 산소 호흡기를 빼고 마스크를 씌어준다.
임다희 보호자분!
멀리서 나의 보호자를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엄마 얼굴이 나타났다.
"고생했어. 괜찮아?"
"배 아파"
비몽사몽 짧은 인사를 나누고 환자용 엘리베이터를 함께 탔다. 그 와중에 내 침대를 밀어주는 남자 간호사가 여리 해 보여서 내가 누워있는 침대를 옮기는데 힘 좀 들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그새를 못 참고 배가 아프다는데 언제쯤 괜찮아질까요? 하고 간호사에게 묻는다.
내가 받은 수술을 이 간호사가 아는 걸까? 전혀 모를 것 같은데 능수능란하게 대답한다. 수술을 막 끝냈으니깐 아무래도 배가 아프겠죠? 진통제도 투여했으니 한, 두 시간 후에는 괜찮아지실 거예요.
최대 두 시간. 그 뒤로는 고통이 사라진다니 두 시간만 참자.
12:00- 3:30 p.m.
수술받기 전 대기했던 병실로 돌아왔다. 병실 간호사가 침대 사용법을 알려 주며, 졸려도 잠을 자지 말고 심호흡을 하라며 수술 회복 방법을 알려주었다. 배가 아프다고 말했더니, 입꼬리가 처지도록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많이 아프면 누르라면서 머리맡에 호출기를 끌어다 준다. 이 병원 의료진들은 한결 같이 친절하네. 천사 같은 간호사가 병실을 떠나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수술받는 동안 끼니 챙기라고 했는데 수술 시간이 짧아서 대기실에 그대로 앉아계셨나 보다. 얼른 가서 뭐 좀 드시고 오시라고 병실 밖으로 엄마를 떠내 보내고 나니 홀로 병실에 남겨졌다.
간단한 수술이라 할지라도, 수술 전 후로 준비해야 하는 과정을 겪어보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뿐이다라는 생각 밖에 나지 않았다. 빠른 회복을 위해 일부러 잠을 몰아냈다. 몸에 남아있던 마취 기운을 얼른 벗어던지고 싶어서 일부러 유튜브를 켰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배 아픔도 많이 사라지고 정신도 점점 또렷해졌다. 간호사가 와서 나의 컨디션이 어떤지 살피는데, 육안으로도 티가 날 정도로 회복된 내 상태를 알아보고는 방긋 웃는다. 팔에 꽂혀있던 수액도 뽑아주고는 화장실 가서 소변도 보면서 몸 안에 장기들도 깨워 주라고 일러주었다. 수술을 받았다는 게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몸이 수술 전보다 더 가볍게 느껴졌다.
그 사이 병실 문을 열고 교수님이 들어오셨다.
“폴립(용종)이 작아서 수술 금방 잘 끝냈습니다. 자궁 주변에 있던 작은 폴립들도 같이 제거했습니다. 떼어 난 조직은 조직검사를 할 테지만, 외관상 나쁘게 보이지 않아서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아요. 회복 잘하시고 일주일 후 외래 때 뵐게요.”
친절한 말투와 표정으로 자세하게 수술 경과를 들으니, 더없이 큰 보상을 얻은 것처럼 마음이 벅찼다.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건네었더니 목례로 응답을 해주신다. 환자를 안심시켜 주는 의사가 제일 유능한 의사가 아닐까? 병원 홈페이지에 교수님 소개 페이지에 적혀있던 ‘정직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문구 그대로 그녀는 나에게 정직하게 최선을 다해준 의사였다. 퇴원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못해 날아갈 것만 같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떨리는 마음으로 자궁 이완제 두 알을 삼켰던 나는 완벽하게 '과거의 나'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