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고 그런 퇴사. 첫 번째도 아닌데, 회사 그만두는데 왜 이리도 유별인가 싶다. 회사를 그만두는 일에 나는 왜 이리도 목매는가. 모든 생각이 이것에서 시작되고, 다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매일 8시간씩 정해진 일 안에서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고, 하루 중 근무 8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 속에서도 나는 일하는 사람으로서 존재감을 확인하려고 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안정된 삶이라고 부모에게 선배에게 사회로부터 배웠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디에서 8시간을 보내냐는 중요한 문제였고,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그렇게 소중했던 8시간이 어느 순간부터 고통으로 변했으니, 내가 투여한 시간과 애정만큼 멀어지고 힘을 빼는 데만도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냥 좀 쉬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어젯밤에 잠을 설쳤던 이유는 일요일 한낮에 3시간이나 낮잠을 잤기 때문이겠거니 했다. 다시 월요일이 시작됐고, 평소처럼 출근을 했다. 출근을 해서도 기분이 영 아니었다. 내 앞, 옆자리 동료들은 오늘 재택근무라 내 주변 자리들은 조용했다. 꼭 필요한 얘기가 아니라면 아무하고도 말을 섞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다행이다 싶었다. 월요일 오전이라서 그렇지 오후 되면 한 주의 시작을 받아들이게 될 테고 그러면 기분도 한결 나아질 거라며 스스로 다독였다. 그러고는 유령인간처럼 자리에 앉아 오늘 할 일을 살폈다.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약속 있는 척하고 회사를 빠져나왔다. 혼자 점심시간을 보내고 싶었을 뿐인데 막상 나오니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때마침 횡단보도 신호등은 파란불로 바뀌었고 점심 먹으러 가는 사람들 틈에 껴서 건널목을 건넜다. 그들을 따라 걷다 보니 회사 근처에 있는 쇼핑몰 앞이었다. 간단하게 점심을 때우고, 몰에 있는 서점이나 구경하다 보면 점심시간이 금방 지날 것이다.
코트 주머니 속에 양손을 찔러 놓고 서점 이곳저곳을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녔다. 평대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책들, 눈높이에 맞게 짜인 책장에 빼곡히 꽂혀 있는 책들을 구경했다. 하나같이 나 한번 봐주세요! 하고 말을 걸어왔지만 나는 시큰둥했다. 나의 두 손은 여전히 코트 주머니에서 옴짝달싹하지 않았고, 일말의 호기심도 없는 흐리멍덩한 눈빛을 흘릴 뿐이었다. 그렇게 책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는 사이 예상대로 회사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횡단보도 파란 불을 기다리며 나의 컨디션이 왜 모양인지를 생각했다.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을 거슬러 되짚어보기란 신호등이 바뀌는 데까지 1분 남짓한 시간 동안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나는 지난 금요일이 떠올랐다. 금요일 오후 미팅을 끝내고, 팀장에게 잠시 얘기를 하자고 했다. 한 주가 끝나는 홀가분한 상태에서 뜻밖의 면담 신청을 했더니 팀장님 눈빛은 휘둥그레졌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심각한 얘기라고 덧붙였다. 그랬더니 그녀는 바로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아차린 눈치였다. ‘그래요. 지금 생각하시는 그것. 그거 맞습니다.’라고 눈빛으로 말하면서, 입으로도 나지막하게 말했다.
저 그만두겠습니다.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는 것처럼,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게 너무 어려웠다. 마음 정리가 됐더라도 막상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번번이 실패했는데 이번에는 실을 툭 끊듯이 그 말을 내뱉었다. 개인적인 이유에서 결심한 퇴사이지만 같은 40대가 갖는 불안과 진로 걱정은 비슷했으리라. 팀장은 나의 퇴사 이유에 대해 공감해 줬다.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이야기를 담담하게 이어가는 나를 보면서 이번에는 정말 그때가 왔구나를 직감했다. 팀장은 자신이 팀원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 같다고 자책했다. 어떤 이유라도 나의 선택에 억울함이 한 톨이라도 묻어 있었더라면 팀장의 말에 내 감정이 요동쳤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만두지 말라는 팀장의 회유에 그럼 한 달 정도 퇴사일을 미룰 수 있다고 농담처럼 받아치기까지 했다.
다희 님, 한 번 더 생각해 봐요.
팀장은 못 들은 이야기로 하겠다면서 나의 퇴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의 대답과 상관없이, 일 년 넘게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말을 하고 나니 그저 후련했다. 이직을 위한 퇴사였다면 그만두겠다는 말은 한없이 경쾌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퇴사의 목적은 전과 달랐다. 퇴사 결정을 지금 해도 되는 것인지, 내가 그럴만한 용기가 있는지 확인하려면 내 어깨를 짓누르던 바위덩이부터 치워야 했다. 그 무게를 견디느라 내 양쪽 어깨는 오랫동안 뻐근했는데, 입 밖으로 나온 그 말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웠다. 벼르고 벼르던 말을 밖으로 내던진 순간, 그간 말을 할지 말지를 오랜 시간 고민 속에서 방황하던 나를 벗어던진 것 같아 순간 쾌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 해방감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내 안에 머물렀고, 이어서 허탈감이 나를 찾아왔다. 퇴사 선언을 한 나의 용기에 가장 먼저 박수를 쳐줬지만, 연이어 뱉은 말을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현실 자각 타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언을 한 지 24시간이 지난 후부터, 그러니깐 토요일 저녁부터 나는 조금씩 멍해져 갔다. 그리고 일요일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계속 잠만 잤다. 오랫동안 떨쳐 버리고 싶었던 바위덩이였는데 막상 떨구어 버렸더니 그 자리에 있던 바위 무게만큼이나 그 공백의 허전함을 어쩌지 못하나 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함과 허탈감은 아마도 그 공백의 자리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퇴사를 20여 일 앞두고 걱정거리가 너무 많다. 멀리 있는 미래에 대해 창대함을 꿈꾸지만, 코앞에 둔 한 달 후의 삶은 안정에서 불안정으로 급락할 것 같고 편함에서 불편함으로 바뀔 것만 같다. 내 이름 세 글자는 바람과 함께 사라질 것만 같다. 현실적인 불안을 떠 앉고도 불특정 한 출발선 앞에 서기로 결심한 이상,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세계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다. 대책 없이 퇴사 선택한다고 했을 때 내 주변 사람들은 우려와 걱정을 앞세웠다. 나는 그들의 걱정을 이해했지만, 나는 바뀌지 않았다. 결심을 했지만 마음은 자주 흔들린다.
나는 지금 제일 떨리고 두렵다. 세상을 홀로 맞서야 한다는 불변의 사실에 나의 마음은 칠흑 같다. 까마득할지라도, 대책이 없어 보여도 그만두기로 결정한 이상 나의 투쟁은 이미 시작됐다. 익숙해진 삶에 드디어 도전장을 내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