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역할과 쓸모에 대한 회의감 점점 젖어가던 지난 11월, 대학 모교에서 강의하는 친구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대학 후배들에게 ‘졸업 후의 진로’라는 주제로 특강을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대학교 졸업한 지 20년이나 됐고, 이모뻘 되는 졸업 선배의 이야기가 별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고, 괜히 후배들 앞에 꼰대 한 명이 나타나서 라테는 말이야~를 읊는 강의가 될 것 같아 수락을 주저하고 있었다.
내게 강의를 제안한 친구 M은 나와 같은 해 입학과 졸업을 하고, 같은 전공을 공부했다. M은 내가 미대에서 섬유예술 전공으로 학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 가서 설치미술가가 되겠다고 몇 년을 날리치다가 다시 인테리어 디자인 공부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디자이너로 일을 한 나의 행적을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 준 친구다.
강의할까 말까를 망설이는 나에게 M은 말했다. “너의 그 변화무쌍한 전공 사연만 풀기만 해도 졸업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야~.” 하긴 내가 전공을 많이 바꾸긴 했다. 섬유예술을 전공해서 그쪽으로 쭉 작가 활동을 해오면서 대학에서 강의하는 그녀에게 나의 진로 이력은 특별해 보였고, 후배들에게 특이한 사례로 들려줄 만했다. 그녀의 설득에 강의하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고 있던 차에 친구 M은 한 마디 덧붙였다.
다희야, 요즘 시대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라는 말은 옛말 같지? 근데 학교는 강산보다 더해.
그러니 내 얘기가 도움이 될까 하는 걱정 말고 편하게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
그로부터 3주 뒤로 특강 날짜가 잡혔다. 직장인의 근무 시간을 고려해서 강의는 저녁 시간에 비대면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일정이 정해지니 슬슬 긴장되기 시작했다. 지난 20년의 나의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전달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일단 노트에 대학 졸업 후에 일어난 일들을 적어보기부터 했다.
시간이 순삭으로 흐른 것만 같았다. 어느새 내가 이 나이가 되었는지 허탈해지다가도 시간 흐름대로 해마다 내가 한 일들을 하나씩 쓰다 보니 지난 시간을 그냥 지나온 것만은 아니었다. 그 해 연도를 생각하면, 그때 나이와 젊음이 어렴풋하게 떠올랐다. 이를테면 2002년 대한민국을 뒤엎었던 월드컵이 개최되던 해, 4학년에 재학 중이었는데 졸업 전시 준비하랴, 영어 공부하랴, 월드컵 응원하랴 열광 도가니였던 대한민국에 적응하랴 정신없었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하나가 되었던 그해 열기를 잊을 수 없다. 2009년 말에는 한국에 돌아와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그때 내 나이 29살. 우여곡절 끝에 그해 12월 첫 직장을 구해서 2010년 1월, 서른 살 늦깎이 신입이 되었다. 2012년, 2015년, 2018년……, 2020년, 그리고 현재까지 내 인생에 굵직하게 일어났던 일들이 모조리 떠올랐다.
행복했던 일, 성취감에 기뻤던 일, 억울했던 일, 가슴 아팠던 일을 겪으며 느꼈던 그때 감정 역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쉬운 일들이 있기는 하지만 후회스럽지는 않았다. 괴롭다고 몸부림치던 때가 분명 있었는데 무슨 일 때문에 그랬는지는 가물가물했다.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답답함을 어떻게 하지 못해서 꽤 외로웠던 것 같은데, 지금보다는 덜 아프고 견딜 만했던 것 같다. 꼭 이럴 때는 보면 자신이 참 얄팍스럽다. 이런 식으로 ‘지금 여기’에 초점을 맞추려 하다니. 과거의 나 보다 지금의 내가 더 가련하게 여기려는 듯 말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날아가기를 여러 번. 이러다가 60분 강의를 재미없는 회고록으로 채우게 될까 봐 다시 정신을 차렸다.
후배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가 뭘지, 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에피소드 몇 개를 추려서 다시 노트에 적었다. 어쩌다 보니 세 번이나 바꾼 전공 이야기, 현재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하는 일과 다니고 있는 회사에 관해 자세하게 소개하는 것으로 강의 내용의 가닥을 잡았다.
강의 전까지 3주라는 시간이 여유롭게 있어서 조급하게 자료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 아마 예전 같았으면 계속 미루다가 막판에 가서 자료 준비하느라 밤을 새웠을 텐데, 40대가 되어 좋아진 점 하나는 바로 이것이었다. 미루는 습관이 많이 없어졌다. 물론 빨래, 청소 같은 집안일은 여전히 몰아서 하는 편이기는 하나,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일에는 시간을 여유 있게 두고 계획적으로 진행한다. 밤을 새우게 되면 그 이후 며칠은 좀비처럼 멀쩡한 날들을 탕진해 버리는 경우를 만들지 않겠다는 이유가 가장 컸지만, 한편으로는 중요한 일수록 미리 해놓았을 때의 안도감에 긴장을 덜 했다. 시행착오 끝에 찾은 나만의 속도와 요령이다.
강의 날, 서른 명의 후배들이 화상 회의 창에 들어왔다. 이렇게 많은 인원 앞에서 내 얘기를 해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긴장을 하니 말은 빨라지고, 화면을 꺼 놓은 상태로 내 얘기를 듣고 있는 후배들이 까만 창 때문에 나는 내 이야기가 이들에게 흥미가 느껴지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정신없이 강의를 하다 보니 60분 강의 중 어느덧 준비해 온 강의로 40분을 무사히 채웠다. 남은 20분 동안은 질의응답시간을 갖기로 했다.
전공을 바꾸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왜 바꾸셨나요? 저도 지금 전공 말고 다른 전공으로 사회에서 일을 하고 싶은데, 꼭 학위가 필요한가요? 학과 과정 말고 학원 같은 데서 툴을 배우면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할 수 있나요?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디자이너 뽑나요? 예상대로 진로를 바꾸는 과정, 그 어려움에 대한 질문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대학교를 막 졸업한 지 오래된 선배라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답변을 해주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내 나름대로 정직하게 경험한 대로 최선을 다해 내 소견을 전달했다. 누구보다도 이들의 목마름과 간절함을 공감하고 이들처럼 고민하는 사람이니까. 이들에게 나는 선배라는 위치에 있었지만, 사실 우리들은 각자 자리에서 같은 위치에 서 있었다.
여럿 질문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한 질문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진로를 바꿀 때마다 걱정되거나 우려했던 적은 없나요?
왜 없었겠어요. 무섭고 두렵기도 했는데 일단 하고 싶은 마음을 믿고 밀고 가는 거죠.
여기까지 내가 해준 답변이었다. 그러나 내가 못다 한 얘기가 있었다.
진로 정할 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내가 힘들게 결정한 진로 일지라도 꼭 끝까지 갈지는 모르는 일이거든요. 또 바뀔 수 있거든요. 어쩌면 진로 고민은 계속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