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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다희 Oct 21. 2023

디자인 일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디자인 일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새로운 업무를  대표님에게 내가 한 말이다. 나의 플랜 B에 퇴사하고 다른 회사로 이직하기를 우선순위로 두지 않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일로 하는 디자인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정반합의 관계 혹은 공식에 의해 딱 떨어지는 결과치를 찾는 것은 일로 하는 디자인 과정과는 거리가 멀다. 디자인에는 순수한 예술과 달리 소비자와 의사결정자라는 거대한 영향력이 곁에 존재하는데 이 세 가지가 어떻게 협력하느냐에 따라 괄목할만한 디자인을 만들어 낸다.     


두리뭉실하게 느끼던 것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실체가 있는 매체로 만들어 내는 이 일의 매력에 빠지면 재미와 재능을 경비한 디자이너는 이 일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 매력적인 일에 자부심을 느끼며 몰입해서 일하는 디자이너에게 찬물을 들이붓는 이들이 있다. 바로 디자인 결과물을 확정하는 의사 결정자들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디자이너가 있고 그들이 작업한 결과물을 최종 가리는 의사 결정자들이 있다. 좋은 의사 결정자는 좋은 디자인을 가려내는 능력과 디자인업에 대한 너른 이해도가 있다. 이들은 의사 결정 단계를 합리적으로 이끌고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디자이너를 배려한다. 디자이너는 어렴풋이 떠오른 것들을 손으로 그리고, 다른 형태로 바꿔 보고, 옮기면서 감각을 찾아낸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 수십 장을 의사 결정자에게 보여주며 개발 과정들을 설명한다. 여러 논의 단계를 거쳐 의사 결정자와 함께 상상하던 그림을 마지막까지 완성하는 것이다.     


그러니 결정자의 의사가 바람에 따라 바뀌는 갈대 같다면 그와 함께 일하는 디자이너는 고난일 수밖에 없다. 그의 번복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여지는 충분하고, 심각할 때는 몇 번이고 도돌이표 과정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조직장의 눈치를 심하게 살피고, 자신의 안위가 무엇보다 중요한 상사 밑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는 본질에서 빗겨 나간 여러 디자인 시안들과 끊임없는 수정 과정에 버틸 각오는 필요했다.  

   

의사 결정자가 아니라서 이들의 고충을 충분히 헤아릴 수 없다는 게 아쉽지만, 매달 자동으로 입금되는 몇백만 원으로 위안을 얻는 것도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했다. 권력자에 입김에 따라 내 손과 발이 움직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벗어던질 수 없었다. 또 버려질 시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또 그리고 수정하는 게 디자인인가 싶었다. 겉으로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라고 내세웠지만, 그 과정은 허세와 허영심만 가득했다. 누군가에는 의미 있고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려는 끊임없는 시도하는 과정으로 보았으리라. 그러나 나는 정반대 벼랑 끝에 서있었고 이렇게 일하는 것을 가치 있고 능력 있는 자로 믿고 있는 착각의 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내게 가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곰곰이 되돌아보면 쓸모 있는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과 만족감을 얻는 게 내게 중요했다.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이 헛물처럼 취급받지 않는다는 신뢰가 나와 일 사이에 존재해야만 했다. 이 것이 꼭 내가 한 일에 대한 칭찬을 의미하지 않는다. 잘못된 결과라도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를 안다면 질책을 받아도 상관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일은 나에게 가치 있는 일이었다.      


구성원이 10명 미만인 이 작은 회사는 책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온라인 독서 플랫폼을 운영한다. 비즈니스를 시작한 지는 일 년이 좀 넘었고, 플랫폼을 시작한 지는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스타트업에서 내가 맡은 일은 개발과 영업을 제외한 기획과 운영, 고객 관리에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 기획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내는 일부터 고객 1대 1 문의에 답변도 한다. 인력이 적은 작은 회사에서 할 일은 많았고 그것이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거부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지금 당장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 업무의 난이도와 관계없었다. 단순한 업무일지 해냈을 때의 만족감은 컸다. 사소한 일이라도 내가 ‘한 일’이 되었을 때, 일의 진척도와 성과가 눈앞에 즉각 보였다. 안내 잘 받았다는 이용자의 감사 메시지로만으로도 내가 한 일에 대한 가치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틀렸거나 실수했다면 인정하고 다시 하면 된다. 서로 생각이 다르면 이야기를 나누고 합의점을 찾고 지금 최선의 길을 찾으면 된다. 그 과정이 원활하고 부드럽지 않을뿐더러 치열하고 집요하다. 매너 있게 본인의 생각을 끝까지 타진하는 구성원들과 회의를 할 때마다 긴장된다. 그럼에도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가려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본질의 궤도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일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정직하고 투명할 때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가치 역시 신성하다고 믿는다. 일에 인생을 걸 필요는 없다. 몇 년 뒤엔 나의 직업이 바꿔있을지도 모르므로. 인생에서 ‘일’에 대한 의미가 중요한 사람에게는 그 영역을 구분해 놓고, 조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순응적인 조직원으로 십 년 넘게 일하고 나서야 일의 의미를 이제야 알아간다. 오래 걸렸다. 자리와 돈이 그 의미를 메꿀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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