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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다희 Oct 21. 2023

새로운 일

  

제주도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던 중에 전 직장 동료에게서 카톡이 왔다. 지인이 독서 모임을 위한 온라인 플랫폼 사업을 준비하는 중인데, 서비스 기획과 운영 업무를 함께 해줄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추천할 만한 사람이 없냐는 질문에 내가 생각났다고 했다.    

 

회사에서 그녀와 종종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 회사 그만두고 책이나 읽을 수 있는 공간에 박혀 있고 싶다고 자주 얘기했다. 회사에 받은 스트레스를 독서와 책모임으로 푼다고 말했다. 이 방법이 지긋한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라며 꽤 유별을 떨었던 것 같다. 그런 까닭에 그녀는 지인의 새로운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를 떠올려 주었다. 


새로운 일에 전혀 마다할 이유가 없는 백수인 나는 흔쾌히 접선을 승낙했다. 13년 차 공간 디자이너가 해왔던 일은 아니지만, 책을 좋아하고 독서와 모임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함께 일하는데 다른 이유가 필요 없다고 했다.          




엉겁결에 시작한 일은 모든 것이 낯설었다. 전 비대면 근무, 자유로운 근무 시간, 독서 온라인 모임 관련 기획 운영 업무, 디자이너 일과는 전혀 다른 직무를 맡게 된 것이다. 이 전과 다른 새로운 세계에 입장한 느낌이었다.


책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런데 문제는 일을 대하는 나의 태도였다. ‘빨리 + 잘’ 일하는 법에 단련됐던 나는 수시로 올라오는 업무 알림에 즉각 반응했다. 대표는 업무 요청에 바로 답장을 할 필요가 없다고 내게 귀띔해 주었지만, 알림이 뜬 순간 안 본 척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일단 무슨 일인지만 알고만 있자며 열어본 메시지에 곧장 답변을 달고 있었다. 메시지 알림이 뜰 때마다 긴장됐고, 전류 치료를 받을 때처럼 등골이 찌릿했다. 빨리 잘해서 대표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몸은 경직됐고, 온 정신도 그쪽으로만 쏠렸다. 이렇게 일하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퇴사를 한 것인데, 오랜 시간 동안 훈련되면서 내 안에 각인된 방식을 쉽게 바꿀 수 있을 리가 맘무 했다.



나는 다시, 내가 왜 이 일은 하는가에 관한 생각은 잊은 채 인정받는 것에만 조급해진 나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을 다시 마주하는 일은 충격적이었다. 이상과 현실 차이의 엄청난 괴리감이었다. 전과 다르게 일하고 싶다고 할 뿐 나는 퇴사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괴로웠다. 그러다 보니 다시 일이 하기 싫었다.  



비대면 근무는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눈치껏 파악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사소한 업무에도 글자로 일일이 소통해야 한다는 점이 부담스럽고 번거롭게 느껴졌다. 이런 질문을 하면, 좀 우스운 걸까? 엉뚱한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별 거 아닌 일을 묻는 것도 에너지를 많이 쏟아 냈다. 내성 생긴 일하던 방식을 내려놓기로 했다. 알아서 해결하려는 습관을 버리자.




견딘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처한 상황이 어려운 환경에 굴복하거나 죽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버티는 쪽은 아니었으니까. 정확하게 집어보자면, 익숙하지 않아서 나를 노출하는 게 불편하고 그런 나를 느끼는 게 어색해서 모면하고 싶었던 이유가 전부였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나를 힘들게 하는 누군가가 외부에 없었다. 논리 정연하게 말하는 대표와 개발자들 사이에서 나의 발언이 무능하게 들릴지 모른다는 긴장과 위축이 스스로 옭아맸다. 멋있고 당당하게 말하는 내 모습을 옆에다 두고 나는 내 생얼 같은 마음을 들여다보며 괴로워했다.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다른 누가 아니라 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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