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하나로 공간이 바뀐다
방 하나에 거실 딸린 부모님 집에 손님자격으로 온 나에게 '나만의 공간'을 찾기란 불가능했다.
티브이를 켜놓고 잠을 주무시는 두 분의 새로운 습관 때문에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도 방안은 사운드가 빵빵한 영화관 같다. 그런 가운데 아버지는 코를 골고 주무신다. 마흔 넘은 나도 가끔은 귀가 잘 안 들리는 것 같은데 70년을 사신 부모님의 청력은 훨씬 둔해지셨겠지? 아니다. 어쩌면 이것은청력의 문제가 아니라 익숙함과 적응력에 따른 편안한 잠자리 사운드 여부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의 예민함이 예전보다 둔해진 것은 '나이 듦'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하는 심증도 쉽게 떨쳐버리기 힘들다.
공해 같은 티브이 소리를 피해서 불 꺼진 거실 테이블 앞에 앉았다. 스탠드를 켜고 노트북을 열었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는 고요함 조차 낯설다. 낯선 고요함을 피하기 위해 혹은 방문 틈새로 새어 나오는 티브이 소리를 피하기 위해 유튜브에 다급하게 접속한다. 알고리즘으로 추천해 준 '카페에서 듣기 좋은 재즈' 음악들 중 귀에 꽂히는 채널로 골라본다. 10초씩 부여한 나의 청각 감각을 동원해서 마음에 드는 채널로 플레이한다.
불 꺼진 거실은 한순간에 분위기 좋은 와인바로 변신한다. 다행이다. 내가 찾던 그 공간 feel이다. 이 공간에서는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깊은 밤의 여운을 느끼며 오늘 하루를 훑어 본다. 부모님과 함께 보내는 휴가라서 '자유가 없는 자유'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모두 내 마음대로는 할 수 없는 소중한 일 주일이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라도 3일이 지나면 불편함의 틈새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지금 당장 내 집으로 가고 싶다는 충동이 몇번 있었다. 그런데 부모님도 내가 돌아갈 때를 기다리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비집고 들어오는 순간, 이 불편함을 나의 방식 대로만 티를 내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조금만 참자.
음악 한곡으로 원하는 공간에 와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