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일 글쓰기
1일 차. 2022년 1월 3일
1000일 차. 2024년 9월 28일
그날이 오긴 할까? 1000일을 채울 수 있을까? 1000일 글쓰기를 해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2022년 1월 3일, 1000일 글쓰기 도전을 시작하며 미래를 상상했다. 이때 마음속에 품었던 비장함은 아직도 생생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보는 도전을 앞두고, 쓰고 싶은 마음만 있다고 해서 끝까지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은 매우 부실해 보였다. 실패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커서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기보다 목표 일수를 채우겠다는 다짐을 하며 첫 번째 글을 썼다. 1000일의 여정을 끝마쳤을 때 분명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환희의 찬 소망을 꿈꿨다.
긴 여정을 끝낸 지금, 나는 다시 묻는다.
소망을 꿈꿨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닮아있는지.
가보지 않았던 길을 택했을 때의 설렘과 기대감은 온몸의 세포까지 곤두서게 한다. 꾸준하게 쓰다 보면 지금껏 알지 못했던 삶의 진리를 터득하고 어제보다 나은 나로 거듭날지도 모른다는, 1000일의 기적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글로 채웠다. 1000일을 채운 지금, 애석하게도 처음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다만 매일 쓰며 훈련된 것이 있다. 보이지 않게 내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감정과 생각의 변화를 쉬이 지나치지 않게 되었다는 것. 피곤하다고 무심히 지나쳤던 매일매일을 글 쓰는 동안만이라도 붙잡을 수 있었고, 매일의 마감은 그날이 그날 같다는 똑같은 하루로 흘려보내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쓰기 전까지 자신을 돌보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내가 왜 화가 나는지, 왜 슬펐는지, 무엇을 바라는지를 이해하는데 서툴렀다. 그랬던 내가 매일 쓰면서 감정과 생각을 천천히 깊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쓰지 않으면 몰랐을 이야기를 꺼내어 속마음을 발견하는 일이 빈번해지자, 내가 얼마나 복잡하고 게으르고 어리석은지 또 단순한 사람인지 알게 됐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갈망한다. 매일 쓰기는 나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가 나를 얼마나 돌볼 줄 아느냐가 중요한지를 가르쳐주었다. 남들로부터의 인정받는 게 우선이었던 내가 쓰는 날이 거듭될수록 진정으로 알아주고 인정해주어야 할 대상이 나라는 것을, 우리 모두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누구나 쉽게 잊어버리는 이 사실을 매일 쓰기를 하며 얻은 최고의 재발견이다.
나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터득한 기쁨과 슬픔, 불안과 두려움, 사랑과 미움의 감정들이 지난 1000일간의 기록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떤 날은 쓰고 나면 답답했던 마음이 시원하게 풀렸다. 어떤 날은 쓸수록 더 혼란스러웠다. 기분 좋게 하루를 마친 날에는 그 기쁨을 기록하며 행복을 두 배로 느꼈고, 힘들었던 날에는 글로 슬픔과 좌절을 풀어내며 스스로 위로했다. 내면 깊숙이 감춰져 있던 욕망과 시기심, 질투심도 자연스럽게 글 속에 묻어났다. 나의 밑바닥이 드러날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쓴 날도 있었고, 부끄러운 글로 채운 날도 많았다. 엉망으로 쓴 글일지라도 나와 대화를 이어갔던 날에는 숨이라도 고르고 편히 잘 수 있게 해 줬다. 매일 쓰지 않았다면 나라는 사람을 이토록 생생하게 기억해 낼 수 있었을까?
매일 쓰기로 차곡차곡 쌓인 뿌듯함과 내면의 기쁨을 알아버린 사람은 계속해서 쓸 수밖에 없다. 쓰는 동안 느꼈던 무수한 감정들이 나를 다시 쓰기로 이끌기 때문이다. 쓰지 않으면 허전한 마음은 늘 허전한 상태로 있을 것 같고, 혼란스러운 마음은 계속 어지러운 상태에 머물러 있을 것 같단 기분이 들게 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쓰는 기쁨은 내게 다른 소망을 품게 한다. 언제까지 쓸 거라고 목표를 세우지 않아도 계속해서 쓰는, 쓰기 위해 쓰는 사람이 아니라 늘 쓰는 사람이 되어 보겠다는 소망이다. 이번은 처음과 달리 확신도 있다. 쓰는 삶은 절대 무료하지 않을 거란 확신에 찬 자신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