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꾸라지처럼 대화하시는 상사님께
대화가 불편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나의 직장 상사이다. 나를 평가하는 사람과의 대화가 편할 수 없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 사람과의 대화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불편하다. 예를 들어, 기분 좋게 대화를 시작했다가 마무리가 될 때쯤 뭔가 당한 듯 대화가 찜찜하게 흘러가거나 혹은 개선을 제안하려는 목적으로 그와 마주 앉았다가 되려 나의 제안은 불평불만에 불과한 오해였다는 식의 애매모호한 대화로 끝이 나버리곤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나는 그와 지는 대화를 한다.
그는 수려한 말솜씨를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대화 방향을 늘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만든다. 당근과 채찍을 주도면밀하게 이용하는 탓에 상대방의 마음을 본인이 원하는 쪽으로 잘 휘두른다. 그리고 나는 쉽게 휘둘리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그와 미팅을 하거나 면담을 하고 나면, 나의 뇌를 그에게 속절없이 다 내보이고 말았다며 불쾌한 감정으로 혼자 씩씩 거린다. 감정이 심하게 상하는 것도 아닌데 대화를 하고 나면 내가 낚였다는 기분이 드는 이유는 뭘까?
그와 했던 몇 번의 면담을 떠올려봤다. 면담하기 전에 나는 사전 준비를 한다. 머릿속에 가상 대화창을 열어 놓고 여러 방면으로 시뮬레이션한다. 꼭 하고 싶었던 업무 이야기나 개선했으면 하는 것들, 그가 던질 예상 질문들을 미리 만들어서 어떤 대답을 할지 머릿속에 정리한다. 준비물도 챙겼으니 면담을 시작한다. 면담의 절반 정도 지났을 때 나를 떠올려본다. 예상 질문과는 다른 맥락으로 대화가 흐른다. 말문이 막혀하고 싶었던 얘기가 뭐였는지 잊어버린 내가 있다. 상사는 나의 말을 듣고는 있지만 공감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제 그가 말할 차례다. 아주 예의 바른 말투로 나를 지긋히 자극한다. 뭉뚱 한 칼날이 찌르는 것처럼 처음에는 별 감각을 못 느끼다가 시간이 조금 흐르면(면담이 끝난 직후부터) 그의 피드백이 점점 선명해진다. 그의 일거수일투족 말들이 내 머릿속을 하얗게 만든다. 네... 네...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을 할 때는 언제고, 면담 내용을 정리하려니 그와 무슨 말을 했었는지, 그의 말의 요지는 무엇이었는지 헷갈리기만 하다.
‘뭘 듣고 뭘 말한 건가?’
나를 비난한 건지 아니면 독려한 건지 조차 구분하기 어렵다. 상사와의 면담은 어느 대화보다 뚜렷한 목적성을 띈 대화 아닌가? 면담은 조직 내에서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을 때 상사의 별도 도움을 요청하는 자리이다. 업무에 방해되는 요인이 생기거나, 갈등 상황을 팀원 스스로 해결하기가 어려울 때 관리자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직접 소통 창구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이기도 하다. 조직마다 상황이 다를 수 있지만 내가 속한 조직은 이런 소통방식을 적극 권장하는 편이다. 나 역시도 용기 내서 두드렸는데 면담 후에 얻는 것이 방향 상실이라니. 물론 나의 말이 맞고 그가 틀렸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의 인정과 존경 여부와 상관없이 그는 회사에서 인정받는 임원 중 한 명이다. 따라서 그는 유능하고 똑똑한 상사인 것이다.
그의 피드백은 나를 설득했고,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는데, 이 너덜너덜해진 기분은 어디서 왔느냐 말이다. 불쾌한 감정이 이성적 사고를 덮어버린 지 오래다. 나의 생각을 뾰족하게, 더 확실하게 다듬어서 얘기했었어야 했다며 스스로를 자책한다. ‘허 참. 그럼 나는 뾰족하지 않고 내 생각이 없다는 말인가?’ 빙빙 돌려 말하는 그의 방식에서 결국 핵심을 찾지 못해 언저리에서만 맴돌다가 끝이 나버린 나의 무능 탓으로 결론짓는다. 역설스럽게도 파국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내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나는 더 나아질 수 없는 것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고 감정의 무게추만 끝없이 가라앉는다.
알면서도 매번 당하는 이 찝찝한 기분 때문에 화가 난다. 화가 나는 나에게 화가 난다. 어쩌면 이 화남은 단순하게 해결될지도 모른다. 그와의 대화를 포기하던가, 그의 대화방식을 따라잡던가 아니면 그보다 더 유능한 사람이 되던가. 그런데 이 역시도 뭔가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