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미정이가 되고 싶다

'나의 해방 일지'

by 임다희

드라마 앓이 오랜만이다. 미국에 있을 때, 한국에서 인기몰이했던 드라마 ‘커피프린스’를 정주행하고 며칠 동안 드라마 덫에 걸려 정신 못 차린 적이 있었다. 영어도 못 해서 허구한 날 수업시간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말 한마디 못 하고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내가 하도 딱해서 위로 좀 해줄 겸 드라마를 봤다. 그런데 이 로맨스 드라마가 나의 외로움을 제대로 건드렸는지 되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향수병만 심해져 더 고생만 했다.


그 후부터는 웬만해서 드라마에 내 마음마저 들이붓는 건 좋지 않다며 몰입하지 않으려고 나를 경계하며 드라마를 봤다. 그런데 결국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




어쩌다가 보게 된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의 첫 회는 별로였다. 뭐 이렇게 드라마가 정적일까 싶다 못해 숨이 막히나 할 정도로 드라마가 밋밋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런 평가의 잣대는 그간 얼마나 자극적이고 단편적인 정보와 즉각적인 판단에 익숙했는지, 클리셰 같은 스토리는 싫다면서 별반 차이 없는 비슷함 사이에서 재미를 찾곤 했는지 깨닫게 된다. 그렇게 이끌림을 전혀 못 느꼈던 이 드라마 몇 회를 그냥 흘려보냈다. 그러다가 우연히 다시 이 드라마를 본 후로 나의 '인생 드라마'가 되었다. 미정이와 구 씨 사이 ‘추앙’이라는 서사가 등장 후로는 몰입은 두말하면 잔소리고, 본방사수를 위해 주말을 기다리게 되고, 다음 회를 기다리는 한 주동안 드라마 짤을 연거푸 되돌려 보며 연기 표정이며 대사를 곱씹었다. 유튜브에 올라오는 드라마 뇌피셜까지 이 드라마에 관한 모든 것을 섭렵하며 추앙했다.



‘높이 받들어 우러러본다.’라는 뜻을 가진 ‘추앙’이라는 단어를 드라마에서 듣게 될 줄이야. 추대하고 존경하는 맹목적인 뉘앙스의 이 단어는 신적인 존재에게만 어울릴 법한데, 이 말을 미정이가 이름도 아니고 '성'만 아는 낯선 남자에게 내뱉는 장면을 본 이후로 나는 미정이의 우울함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관계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의 부대낌, 미정이라서 짊어지게 되는 그 피로함과 쳇바퀴처럼 도는 일상의 지긋함에서 그녀는 어떻게 해방할지가 궁금해졌다. 나는 그것을 미정에게 배우고 싶었다. 그녀처럼 단단해지고 싶어서 이 드라마를 봤던 것 같다.



구 씨를 보며 누구를 떠올렸고, 창희를 보면서 그가 생각났다. 내 마음속 어질러져 있던 말들을 하나씩 정리해주며 어루만져 주기까지 하는 대사 때문에 나도 드라마 속 인물처럼 똑같이 애잔했고, 속상했고, 답답했고, 다정했다. 그 공감 덕에 드라마를 보는 것 자체가 나에게 ‘해방’이었다.





16부작 드라마는 아쉽게도 끝이 났다. 다행히 마지막 회는 해피엔딩이었다. 구 씨는 죽지 않았고, 미정이는 사랑으로 채워졌고, 창희는 자기 자리를 찾았고, 기정이는 성숙한 연애를 이어가는 아주 흐뭇한 드라마로서 끝이어서 나도 행복했다. 드라마 제목처럼 해방을 위해 하루하루를 한발 한발 어렵게 어렵게 내디디고 사는 시청자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 작가의 배려 아니었을까. 나의 해방일지가 그대 모두의 각각의 해방일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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