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경험 누구나 한 번쯤 있으시죠?

-눈 뜨고 한 실수

by 임다희

지난주 목요일에 벌어진 일이다.

갑자기 제주도에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겨 급하게 항공권을 끊었다. 대한항공 앱을 켜서 출발·도착지를 지정하고 출발일을 선택하고 일정 검색을 했다. 오전에 출발해서 오후에 미팅하고 저녁에 서울로 돌아오는 일정으로 비행기 표 애매를 했다. 그리하여 내가 모바일로 끊은 비행기 일정은 이랬다.



4월 21일 09:10 김포 출발-> 제주 도착

4월 21일 19:50 제주 출발 -> 김포 도착


내 기억에는 분명히 이랬다.




비행 출발하기 최소 한 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하는 게 좋다. 더군다나 아침 비행기를 타야 해서 전날 밤부터 살짝 긴장되었다. 늦잠이라도 잘까 봐, 기상 시간 앞뒤로 10분 단위로 쪼개 알람을 서너 개 더 맞춰 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행히 첫 알람이 울리자마자 눈이 떠졌다. 일사천리로 떠날 채비를 하고 여유롭게 집을 나섰다.



김포공항에는 8시쯤 도착했다. 모바일 체크인도 미리 해뒀고, 부칠 짐도 없다. 탑승 수속만 하면 된다. 아침 시간이라 그런지 공항에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수속하는데 오래 걸릴 만큼 영향을 줄 정도로 붐비지는 않았다. 게다가 나는 지난 추석 공항에서 바이오 정보 사전등록을 미리 해뒀었다. 이 등록을 해놓으면 국내선을 여행할 때 전국 어느 공항에서나 일대일로 탑승권, 신분 확인 필요 없이 전용 게이트로 초속도로 수속 절차를 마칠 수 있다. 탑승수속도 5분 안짝으로 끝낼 수 있을 것이다. 비행기를 타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하늘을 날아 편안하게 다른 장소로 갈 수 있다는 이동 수단의 매력과 연관이 있어서 일까? 출발 시각을 넉넉히 앞두고 공항에서 즐기는 여유로움은 질적으로 느낌이 다르다.



시간적인 여유가 심적으로도 다가왔었나 보다. 평소 같았으면 바로 탑승 수속을 했을 텐데, 그날따라 비상구 자리가 남아있는 확인하고 싶었다. 만약 비어있다면 비상구 쪽 자리로 좌석을 바꿔 달라는 요청을 하려고 항공사 창구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아! 제가 체크인까지 마쳤는데요. 혹시 비상구 자리로 변경할 수 있을까요?”

“네, 확인해보겠습니다. 탑승권과 신분증 보여주시겠어요?”

“네! 모바일 탑승권이랑 신분증 여기 있습니다.”



탑승권과 신분증 확인을 한 후 30초쯤 흘렀을까? 직원의 눈 표정이 좀 이상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표정을 다 알 수는 없었지만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아. 저 고객님…. 구매하신 9시 10분 비행기는 제주 출발로 되어 있으시고,

김포 출발은 19시 50분으로 되어 있으신데요?”


“네에? 그럴 리가요???”



직원분이 모바일 항공권을 보여주며 친절하게 확인해준다. 헉! 이게 무슨 일인 싶어 동그래진 눈으로 내 핸드폰 화면을 다시 봤다. 설마 그럴 리가 했던 대로 가는 편에 있어야 할 ‘GMP 서울/김포’가 오는 편에 쓰여있었다. 그렇다. 나는 출발, 도착 지점을 반대로 해놓고 왕복으로 표 구매를 했던 거였다.

당황한 눈빛이 역력한 얼굴로 직원을 쳐다보자,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나에게 말했다.



“간혹 이런 실수를 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아. 네....ㅠㅠㅠㅠ (이런 분들이 저 말고도 종종 있군요.. 그러나 전혀 위로되는 말은 아니다.)


그러면 오전 김포 출발 일정으로 변경 가능할까요?”

“죄송합니다. 현재 오늘 비행기는 다 만석이예요.

대기하시려면 건너편 창구에서 대기표 받아서 자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셔야 합니다.”


“네?? 만석이요?? 아……대기요……."

"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놔…. 이게 무슨 일이지? 이런 어이없는 실수를….

출발하기 이틀 전, 나는 급하게 제주도 방문이 확정되자마자 일사천리로 비행기 표를 샀다. 심지어 카톡방에 일정 공유도 버젓이 해뒀는데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아니다. 누구를 탓하리오. 일사천리로 하다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실수를 저지른 게 나인데. 지금에 와서 왜 이런 실수를 했는지 따지면 뭐하나 책망할 때가 아니다. 빨리 대기 창구로 가서 대기표를 받아야 한다. (난 제주도에 가야 한다.)



비행기 표를 다시 구매하고 받은 번호는 27번이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내 앞에 스물여섯 명 혹은 스물여섯 팀이나 있었다. 직원에게 오전 비행기를 탈 확률을 물어보니, 대기해봐야 알 수 있다는 원론적인 대답만 되돌아온다. 더 침울해진다. 지금 시각 오전 8시 40분. 9시 10분 출발 비행기 탔더라면 게이트 앞에서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커피 한잔을 하면서 곧 타게 됐을 비행기를 쳐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불투명한 나의 초근접 미래에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제발! 한 자리만 나와 주세요!' 한 층 위에 있는 출국장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을 넋 놓고 바라봤다. '저들이 부럽다.' 40분 전까지만 해도 저들과 다를 바 없이 호기롭게 여유를 부렸던 나는 온데간데없었다.


창구 직원이 27번 대기 번호 옆에 10시 5분, 10시 15분, 10시 30분을 써줬다. 안내한 시간에 다시 대기 창구로 오면, 이후 시간에 출발하는 비행기에 탑승할지 말지를 알려준다고 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더 침울해졌다. 혹시 다른 항공사에는 남은 표가 있을까 해서 창구를 다 가보고, 인터넷 항공권을 샅샅이 뒤졌지만, 표는 다 매진이었고, 현장에서 대기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거의 한 시간째 발만 동동거렸더니, 온몸에 힘이 다 풀리고 말았다. 일단 의자에 앉아서 정신을 좀 가다듬어보자. 27번이면 비행기를 탈 수 있겠지? 문제는 언제 탈 수 있느냐였다. 우선 10시 반까지 기다려보자. 그때 내 번호가 불린다면 오전 비행기를 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오후 1시로 약속했던 미팅을 두어 시간 정도 후로 미루면 될 것 같았다. 만약 10시 반 넘어도 내 번호가 불리지 않는다면 오늘 미팅은 취소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그다음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해보기로 한다.



'스트레스받지 말자. 뭐 이럴 수도 있지. 이런 실수 누구나 한 번쯤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뭔가 홀린 듯 어이없이 해버린 실수에 나를 원망한 들 뭐하리. 실소가 터지면서 사람인데 뭐 그럴 수도 있다며 그냥 뻔뻔해지기로 했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어떻게든 비행기만 타면 된다. 침착해지려고 마음속으로 주문을 걸어본다.



'오전에 비행기 탄다!

왠지 12시 전에 제주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김포를 떠나게 될 것이야~'


.

.

.

.

.

.

.

그로부터 3시간 후

(공항 도착 시각 4시간 후)


오전 11시 50분 김포에서 출발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되었다. 밑도 끝도 없이 외웠던 주문대로 된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아무렴 어떠한가. 결국 비행기를 탄 것을..


1시에서 2시로 미팅 시간을 미루긴 했었지만, 그날 미팅은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일을 마치고 저녁 비행기를 타고 무사히 서울로 돌아왔다. 4월 21일 목요일, 어쨌든 그날 마무리는 훈훈했지만, 나의 황당한 실수 때문에, 쫄깃하게 혼쭐났던 그날의 오전을 생각하면 아직도 저절로 탄식이 나온다.….



아! 피곤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