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 기간 중 마음 챙기기

코로나 확진 3일 차

by 임다희

열도 없고, 근육통도 없다. 기침도 많이 잦아들었다. 그런데 코가 막히고 맵다. 간질간질하면서 잊을 만하면 재채기가 나온다. 이때 동반할 수 있는 통증, 예를 들어, 목이나 코 주변으로 따끔거리거나 가슴을 찌르는 듯한 자극은 없다. 다만 코가 먹먹하고 답답한 것이 마치 오미크론 바이러스가 내 코만을 집중 공략하는 것 같다. 후각이 좀 둔해졌지만, 밥을 잘 먹는 걸 보면 냄새를 전혀 못 맡을 정도는 아니다. 아직 격리 4일이 더 남았다. 생각보다 덜 아파서 다행이지만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될 터다. 생강차를 수시로 마시고, 약도 꼬박꼬박 잘 챙겨 먹는 중이다.




어제보다 정신 상태가 한결 좋아져서 계획대로 책상 앞에 앉았다. 글도 써야 하고, 문서 기반 툴 앱 ‘노션’ 활용하는 법도 배워야 하고, 포트폴리오 정리도 해야 하고, 듣다 만 온라인 수업도 마저 들어야 하고, 읽겠다고 벼르고 있는 책도 쌓여 있다. 할 일 많은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꼭 해야 하는 일도 별로 없는 것 같다. 매번 이런 식으로 스스로 일 벌여놓고, 내 의지와 싸운다. 계획한 일을 못하면 또 자책과 원망을 하면서. 하겠노라고 계획한 일들인데, 할지 말지 고민하는 모양새를 보자 하니 조급함 떠밀려 성급하게 나열한 것 같다.


이럴 때마다 스스로 들고일어나 탓하는 것은 나의 성격적 기질이다. 완벽하지도 않으면서 완벽을 추구하고, 나의 속도를 찾는다면서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조급해지고 불안해진다. 배운 것도 많고,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도 많은데 가진 것에 감사하기보다, 아쉽고 부족한 것에 더 많은 생각을 기울게 되는 걸까?


인간은 부정적인 생각을 훨씬 많이 한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그러므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기사의 요지였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이며 뇌에 축적된 정보이기는 하나, 막상 부정적인 이 어둠의 길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 그 길에서 빠져나오기까지 온갖 수고가 필요하다. 수많은 잡념에 휩싸여 자책했다가, 비관했다가, 원망했다가를 거듭하다가 더 뒤엎을 땅굴이 없을 만큼 끝을 헤집고 나서야 하늘을 보려고 고개를 든다. 이럴 때면 정말 나의 뇌를 열어서 좀 들여다보고 싶은 정도다.


이 과정이 무척 괴롭고 고달파서 어떻게 하면 덜 힘들까를 얻기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쓰려는 것 같다. 그런 까닭에 우연히 펼친 책에서 나와 비슷한 고민을 발견하고, 나의 힘듦을 어루만져 준다는 느낌을 받으면, 어둠에서 빛 한줄기를 보듯 위로를 받으며 감동하는 이유일 테다.




차 한잔을 옆에 두고 읽겠다고 쌓아둔 책 중에 한 권을 뽑아 펼쳤다. 김미소가 쓴 <언어가 삶이 될 때>라는 에세이다. 저자의 이력이 특이했다. 아빠의 재혼으로 ‘베트남 언니’ 엄마를 둔 다문화 가정에서 자란 한국 여성이자, 미국에서 응용언어학 박사 학위를 따고, 일본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30대 젊은 교수이다. 그녀의 배경에서부터 언어와 문화를 넘나드는 삶이 떠올랐고, 책 내용 역시 언어와 문화 경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젊은 외국인 여자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비원어민으로 살아가는 한국 이민자와 유학생들에게 직접적인 공감과 위로가 되겠지만, 낯선 세계에 발을 들이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따뜻한 용기를 얻을 수 있겠다 싶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낯선 환경에서 살기 위해 적응하는 데에 생존을 위한 용기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꼭 다른 나라에서 살지 않더라도, 이전과 다른 삶의 방식을 고민하거나 새로운 출발선에 선 상황이라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것 역시 같은 맥락의 용기가 필수 아닐까.


30대가 되자마자 얻은 교수 타이틀, 일어, 영어, 한국어 3개 국어의 능통한 언어 박사의 삶에 자랑 섞인 일화들로 책이 채워졌다면 책장 몇 장을 넘기다 말았을 거다. 베트남 엄마가 생기면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했던 다문화에 대한 불편한 시선과 간극, 제2 언어인 영어를 공부하면서 비원어민이 영어를 가르치게 된 이야기, 일본에 건너가 영어를 가르치면서 살기 위해 제3 언어인 일본어를 배우는 과정,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자신의 정체성과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혼돈과 적응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준다. 책 절반쯤 읽었는데, 이미 나는 그녀의 고군분투한 이야기에서 용기를 얻는다.




견디지 못할 만큼 아픈 게 아니라서 ‘코로나 확진’이라는 명명과 ‘일주일간 격리’라는 방침이 나에게 더 큰 산으로 다가온 것인지도 모른다. 점점 집순이가 되어가는데, 나가지 말라고 더 나가고 싶어지는 심리적 저항 역시 코로나를 이겨내야 하는 증세 중 하나다. 남은 격리일 동안 혹여 몸 증세가 더 나빠지는 것은 아닌지 잘 살펴야겠지만, 쓸데없이 깊은 우울함과 무기력함에 허우적 되지 않도록 나의 기분 또한 잘 챙겨야겠다. 남은 책도 마저 읽고, 계획했던 일도 하나씩 해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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