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 인간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구는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보다 구닥다리로 느껴지는 소설은 없다. 설사 그의 모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다고 해도 불안 속에서 자신이 이해한 게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주인공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기 때문에 그런 주인공에게 우리의 마음이 가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원하는 그런 세계는 절대로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할지도 모르고, 이 병은 낫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고 이 불안을 모두 떠안겠다. 그리고 정말 우리가 원하는 세계가 오지 않는 것인지 한 번 더 알아보겠다. 이게 현대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윤리가 아닐까. 자신의 불안을 온몸으로 껴안을 수 있는 용기, 미래에 대한 헛된 약속에 지금은 희생하지 않는 마음, 다시 말해서 성공이냐 실패냐를 떠나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태도. " _ 김연수 산문 <소설가의 일> 중에서
소설가로 유명한 김연수 님의 글을 처음 읽고 있어요. 그의 첫 책이 소설이 아니라 산문집입니다. 작년에 제주도에 갔다가 동네 서점에서 고른 책인데 최근에서야 읽기 시작했습니다. 김연수 님의 글도 참 좋네요. (혼자 뒷북이죠? 이 책 읽고 나면 그의 소설책을 읽어야겠습니다.) 글에 진지함과 재치가 함께 묻어있어요. 생각의 깊이가 묻어난 밀도 있는 문장들을 읽다가 종종 웃음보가 터집니다. 작가님의 지질한 속마음을 멋있게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보여줘서 저도 따라서 피식거립니다. 그러다 울림을 주는 문장을 만나면 머릿속이 (생각하느라) 복잡해져서 읽고 멈추기를 반복합니다. 그래서 천천히 읽고 있어요.
발췌 글은 지금 제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을 담고 있어서 가져와봤습니다. 담대하게 불안을 떠 앉고, 죽느냐 사느냐에 연연하기보다 지금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태도. 저도 갖고 싶어요. '이 세상은 소설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것도 잘 안되고, 사느라 발버둥 치는 주인공에게 매력을 느끼기는커녕 고생하느라 안쓰럽기만 합니다. 피곤하고 배고파서 그런가 봐요. 마음은 파이팅 할 생각을 없고, 좁은 틈으로 숨으려고만 하네요. 제 마음인데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이 병은 낫지 않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