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때도 써봤어요

희미한 재라도 쓰고 싶은 욕구가 있을 때

by 임다희

사실 오늘은 읽고 싶은 마음도 쓰고 싶은 욕구도 별로 없는데, 솔직히 이상한 글이 될까 봐 안 하려고 했는데, 매일 하는 양치질처럼 습관에 이끌려 그냥 몇 자 적어 볼게요.



사놓고 못 읽은 책과 읽다 만 책들이 책장과 책상 위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딱히 읽고 싶은 책은 없네요. 다 읽지도 않으면서 지적 허영심만 가득한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책장에 손을 뻗어 아무거나 집어 펼쳤습니다. 백 프로 아무거나 집었다는 것은 아마도 거짓말 일 거예요. 제 눈은 <빛과 안개> 책 제목에 멈췄고 그리고 그 책을 집었으니까요. 그러나 발췌한 글은 정말 우연하게, 손가락 감각으로 고른 글입니다.



읽으면 쓰고 싶다. 읽는 행위는 쓰는 욕구를 건드린다. 문장을 읽으면서 낯선 생각이 줄줄이 딸려온다. 놀랍고 생경한 관찰들, 다르고 새로운 표현들이 책 바깥의 나를 확 끌어당긴다. 그러곤 몇 개의 단어와 이미지를 던져 준다. 생각은 마른 낙엽처럼 불이 붙지만 문장으로 써서 남겨 두려고 하면 이미 다 타버린 다음이다. 희미한 느낌만 재처럼 남아있다. 그러면 재라도 긁어모아 써낸다. 신기한 것은 작정하고 앉아서 쓰는 것보다 재를 모아 써낸 것이 마음에 들 때가 더 많다는 점이다. (p.70)

최유수 <빛과 안개> 중에서



희미하게 재처럼 남은 생각이라는 표현에서 무릎을 치고 말았습니다. 읽다 보면 생각의 확장을 경험하게 되는데 막상 글로 쓰려고 하면 방금 전에 생각들이 어디론가 흩어집니다. 어렴풋하게 남은 생각의 조각들을 긁어모으는 것부터 힘듭니다. 게다가 희미해진 재에 기대어 적확한 표현을 찾으려고 하는데, 쉽게 될 리가 없죠. 이게 당연한 건데, 또 욕심이 나고 성급해져요.



그럴수록 더 읽고 쓰고 읽고 써야겠죠?

네..


다 알면서도 넋두리해봤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다시 정신을 차리려고 노트북을 열었는데 뭘 쓰고 싶은지 조차 막막해서 느낌 가는 대로 써봤습니다. 이런 상태인 나인 것도, 무기력한 나를 기록하는 것도 제겐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요. 그러나, 더 구구절절해지기 전에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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