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기사

by 임다희

정기구독 중인 잡지 이달 호가 문 앞에 도착했다는 택배 알림 문자가 왔다.


문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을 잡지가 떠올라 바로 현관문을 열었다. 택배 상자 개봉하듯 미니 커터칼로 반투명한 비닐 한쪽을 그어 낸 다음 따끈한 소식지를 펼쳐 들었다. (나만의 습성인지 모르겠으나) 책과 다르게 잡지를 볼 때는 표지를 보고 첫 페이지로 넘기는 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잡지 뒷부분부터 쓸어 넘기며 먼저 대충 훑는다.


그렇게 잡지 맨 뒤 페이지부터 후루룩 넘기는데 순간 익숙한 얼굴이 휙 지나갔다. 순식간에 지나친 얼굴을 찾으려고 넘기던 페이지를 멈추고 그 언저리를 더듬기 시작했다. 대여섯 페이지를 넘겼을 때쯤 그 익숙한 얼굴이 나왔다. 순간 ‘헉’하는 둔탁한 비명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얼마 전까지 다녔던 회사 조직장의 얼굴이었다. 여덟 페이지나 할애하여 그의 기사가 소개되고 있었다. 그의 지난 경력부터 현재 디자인 조직의 총괄 수장으로서 현시적 리더십과 운영안, 그간 일궈낸 성과와 앞으로의 비전에 관한 내용이었다. 함께 일했던 사람이고 불과 몇 개월 전까지 수년간을 몸담고 일했던 회사의 '아는 이야기'가 지면을 탔으니 반갑지 않을 리는 없었다.



그런데 기사 첫 줄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조직명과 그의 이름 위로 타이틀로 따라붙은 수식어구부터 거슬렸다.




'천재성과 힘과 마술을 이끄는 창의력'




진부하고 장황했다. 기업 디자인에서 천재성을 논하기에는 어딘가 어색하고 좀 무모하다. 디자인이 결과물로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달리 말하면 ‘기업 디자인의 현실’을 지나치게 미화한 티가 났다. 설령 디자인에 관한 자신의 세계관을 말하려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뒷받침해줄 성과는 현실적으로 잘 닦이고 다듬어진 결과물이 아니던가. 무엇이 천재성의 힘이고 마술을 이끈다는 것일까?



멋진 말들인데 그 사이는 텅 비어있는 것처럼 뭔가 충분치 않았다.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시대적 정의와 역할론에 대한 그의 멋있는 답변 역시 거창하고 장황했다. 그가 말하고 싶은 ‘천재’와 ‘창의’란 무엇이며 어디까지 일까? 그것들에 대해 좀 더 뾰족한 설명이 있었다면 나의 오해은 쓸데없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윤에 흠집 내지 않는 선에서, 의사결정자의 취향에 맞는 지점을 찾는 것이 기업이 추구하는 디자인이 아니었던가? 그가 있는 위치에 있어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거추장스럽게 포장해서 말해야 하는지는 의문스럽다. 어쩌면 그것이 현실이라고 인정해버리기에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야 하는 누군가의 소명을 쉽게 외면할 수 없는 그의 염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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