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력

by 임다희

얼마 전 서울에 있는 차를 탁송 서비스를 이용해서 제주에서 받았다. 제주에서 머무는 동안 내 차가 있다면 어디든 이동하는데 편하겠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이 기회에 엄마가 필요한 서울 살림살이 몇 가지를 내 차로 가져올 수 있었다.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 서비스로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차를 픽업해서 하루 만에 모슬포 집 앞까지 운송해 주었다. 차가 있다면, 부피가 큰 짐이나 이삿짐은 아니지만 별도로 발송하기 어렵고 애매한 물품, 이를테면 컴퓨터나 가전제품 같이 깨지기 쉬운 짐들을 제주로 보낼 때 유용한 배송 방법인 것 같다. 이참에 서울에서 쓰던 데스크톱 컴퓨터와 모니터도 꼼꼼히 포장해서 서울에서 데리고 왔는데, 전시품처럼 세팅만 해놓고 주로 노트북만 쓰고 있다.



차가 있으니, 자꾸만 모슬포를 벗어나 제주의 다른 모습을 둘러보고 싶어졌다. 확실히 나의 기동력에 내차가 박차를 가해 준 셈이다. 비가 쏟아지던 지난 어린이날, 쇠소깍 근처에 있는 테라로사 서귀포점에 가서 빨간 벽돌집 숲 속 정원을 바라보며 향긋한 커피를 마시고 왔고, 어제는 모슬포와 정 반대쪽, 송당에 위치한 코사이어티 빌리지를 둘러보고, 성산을 지나 제주 남쪽으로 이동했다. 표선 해수욕장에 잠시 발길을 멈춰서 드넓은 모래사장과 비가 그친 사이로 햇빛이 드리워진 바다를 멀리서 감상하다가 모슬포로 돌아왔다.




내릴 만큼 내렸다고 생각했던 봄비는 오늘 아침에도 또 내리고 있었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오늘 계획은 옥상 정리를 마저 끝내려고 했는데, 비 덕분에 깔끔하게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대신 예술인의 마을 저지리에 있는 책방 소리소문으로 향했다. 제주에서 유명한 독립 책방 중 한 곳으로 알고 있고, 모슬포에서 약간 북쪽으로 올라가며 갈 수 있는 그리 멀리 않은 동네라서 작년부터 가보려고 몇 번 시도했었다. 그때마다 정기 휴무일 혹은 임시 휴무일과 겹쳐 번번이 실패했었다. 인스타그램으로 책방 영업시간을 확인한 후, 추적추적 오는 비를 뚫고 예술인 마을로 유명한 저지로 향했다.



아늑한 느낌을 풍기는 꾸불꾸불한 현무암 돌담길을 지나 자그마한 집채의 책방에 도착했다. 책을 읽지 않는 엄마에게 혹시 책방이 지루하지 않을까 하고 염려했는데, 나의 예상과 반대로 지금 당신에게 꼭 필요한 거라며 고른 책 두 권을 나에게 소개해줬다. 책 제목만 읽어도 무엇 때문에 고른 책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오히려 책을 고르지 못한 사람은 나였다. 눈 씻고 찾아도 밟히는 책이 없었다. 집었다가 다시 놓아 버린 책들이야 없었겠냐만은 '서울에서 가져온 책들이나 먼저 다 읽으시지'하는 마음이 밟혀 차마 지갑을 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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