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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내서 미안해

모녀사이에 생긴 일

by 임다희

평생학습관에서 포토샵 강의를 듣고 온 엄마는 치킨에 맥주가 먹고 싶다고 했다. 이런저런 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엄마의 심기가 오늘따라 더욱 불편해 보였다. 몰입과 배움의 재미를 느껴볼 요량으로 신청한 포토샵 수업에 엄마는 되려 스트레스를 받는 중이다. 엄마가 포토샵에 특별한 애정을 갖게 된 배경에는 사진 때문이다. 십 년 전쯤 엄마는 사진 학교를 다녔고, 이후 몇 번의 사진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사진작가로서 활동하면서 찍은 사진을 보정하는 배움을 포토샵으로 익혔던 것이다. 그때의 포토샵을 익혔던 것만으로 배움의 갈증이 충분히 해소되지 못했으리라. 더군다나 툴(tool)이라는 건 꾸준히 활용하지 않으면 쓸 줄 아는 능력이 퇴보하듯이 엄마에게는 포토샵이라는 게 어렴풋한 기억으로만 남게 되었고, 기회가 된다면 다시 배워보리라는 의지를 품고 있었다.


야! 나도 할 수 있어! 어느 영어 학습 광고 문구처럼 평생학습관에 포토샵 학습 강좌가 열린다는 걸 알게 된 엄마는 그 기회를 찾은 것이다. 수강 신청을 하고 첫 강의가 열리는 날까지 신이 난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의기양양했던 엄마는 수업 2주 차부터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답답해하기 시작했다. 수강생 대부분 엄마 또래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강사는 일일이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엄마는 기초 수업이라 하지만 수강생 수준은 천차만별이라는 하소연도 덧붙였다. 일부 수강생들은 파일 열고 닫고 저장하고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등등 기본적으로 잘 알고 있어야 할 기능도 버벅거린다며 자신은 이 정도로 쌩 초보자는 아니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나의 진단으로는 엄마 역시 기본적인 기능에 그리 능숙한 편은 아닌 수강생이다. 그런 와중에 강의는 다양한 도구를 활용한 이미지 만들기, 자르기, 색 바꾸기, 마스크 씌우기 등 진도를 빼고 있으니 엄마의 답답함을 내가 모를 일은 아니었다.


그나마 내가 디자인 공부를 했고, 포토샵은 웬만큼 다룰 줄 알기에 엄마는 강의를 잘 따라가지 못해도 내게 물어보면 된다는 ‘뒷받침’할 자료를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엄마의 속마음을 비추지 않아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나였다. 엄마의 공부를 도와주는 게 버거운 일이라고 마음속 깊이 담아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것을 반복해서 알려줘도 엄마는 계속 잊어먹기 일쑤였고, 집중력도 떨어져 자꾸 엉뚱한 곳을 가리키곤 했다. 교재에 안내된 순서에 따라 기능을 익히는 것도 힘들어했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 입장에 선 내 목소리와 말투에 힘이 들어가고 슬슬 짜증이 실리게 되는 것이다.




엄마의 기분을 풀어주고 싶은 마음에 요즘 맛있다고 소문난 60계 치킨의 크크크 치킨을 주문했다. 치킨에 빠질 수 없는 맥주를 사러 집 앞 편의점에 후다닥 달려갔다.


바삭한 치킨에 시원한 맥주를 넘기면 엄마의 기분도 덩달아 풀리지 않을까 하는 나의 바람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치킨에 맥주까지는 완벽했으나! 배가 든든해진 엄마가 내게 오늘 배운 포토샵 강의 복습을 도와달라는 얘기를 꺼낸 것이다. (이 지점이 화근!)


맥주 한 캔에 알딸딸해진 나는 쪽잠으로 술기운을 깨우고 나서 엄마를 돕겠다고 했다. 아마 30분 정도 잤던 것 같다. 내가 자는 동안 엄마는 오늘 배웠던 부분을 다시 해보느라 낑낑대고 있었고, 나는 비몽사몽으로 엄마 곁으로 가서 막힌 부분을 봐주기 시작했다.



하기 싫은 일을 하면 티가 팍팍 날 수밖에 없는 법. 특히 가족 사이에서는...

솔직히 말하면 내가 선생 노릇을 하기 싫었다. 어차피 가르쳐 줘도 또 잊어먹을 것이고, 설령 이해했다고 말해도, 혼자서는 연습하지 않을 거라는 낮은 기대치 때문이었다. 엄마에게 이걸 꼭 배워야 하냐고 묻고 싶을 정도로 나는 회의적이었다. 배우고자 하는 엄마의 순수한 열정을 성과 목표와 결과 잣대로 들이대는 냉정한 딸이 되고 만 것이다.


어느 순간 더 열이 오른 엄마는 내게 ‘다른 가족과 마찬가지로 너도 똑같다. 내가 다 문제지’라며 비수 꽂힌 말을 던지고는 집을 나가버렸다.



어랏. 이게 아닌데... ㅠㅠ


좀 더 인내심을 갖고 엄마를 기다려줘야 했던 딸이 되지 못한 나는 엄마에게 미안했다. 한 편으로는 자기 요구대로 내가 다 받아주기를 기대하는 엄마에게 미안하지 않았다. 점점 나이 늘수록 예전에 없던 빈틈이 점점 커지는 엄마의 모습에 속상하고 당황스럽다. 서로 미안하고 속상해서 쉽게 화가 나고 짜증 나는 아이러니한 관계가 모녀 사이 아닐까? 내 몫만큼 엄마를 이해할 줄 아는 딸이 되고 싶은데, 그럼에도 엄마를 이해하고 안아 주는 상처 덜 주는 딸이 될 수 있을지 너무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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