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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다희 Sep 04. 2023

다들 잘 지내기를 바라요

일요일 주말 저녁,

이번 여름동안 참여했던 심리학 스터디 모임의 뒤풀이를 가졌다. 5주간의 스터디가 끝나고 한 달 만에 다시 모인 자리였다. 한주 간 쌓인 피로를 푸는 대신 주말 아침에 하는 스터디라니, 부지런히 참여하는 모임원들을 보면서 주말에도 다들 열심히 사는구나 싶었다.




아침대신 느긋한 저녁 시간에 시끌벅적한 피자집에서 다시 만나니 다들 반가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항상 점잖게 나누던 인사도 한껏 격양된 목소리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이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에 흥미가 있는 사람들이다. 각자의 근황을 주섬주섬 풀어내면서도 대화의 방향은 자신의 감정과 마음 상태 쪽으로 자연스럽게 초점이 맞춰졌다.



최근 연애를 시작했다는 P는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남자친구와의 갈등 문제를 토로한 Y는 모임 내내 복잡한 심경을 추스르느라 괴로워 보였다. 2주 뒤에 호주로 떠날 계획을 전한 H는 새로운 도전을 앞둔 사람답게 어느 때보다 다부진 모습이었다. 모임 멤버 중에 가장 여려 보여서 옆에서 챙겨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S는 뒤풀이에 오기 전 마라톤에 참여했다고 했다. 스터디 모임장이자 유일한 청일점이고 청년 사업가인 L도 일요일에도 모임 두 개를 진행하고 뒤풀이에 오는 길이었다고 했다. 다들 각자 자리에서 자기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의 얘기를 들고 있으니, 재밌다고 소문은 났지만 미처 챙겨 보지 못했던 영화 줄거리들을 주인공이 직접 들려주는 것만 같았다.




이야기를 듣는데

문득 이들의 삶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20대부터 40대까지 함께 있는 모임. 이미 직감하고 있었지만 이들 중에 내가 가장 연장자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아무리 주문을 외워도 또래가 아닌 특히 나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무리에 끼어있다 보면 저절로 어깨가 말린다. 내 나이를 밝혔다 해서 체감상 그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바뀐 것은 없었다. 반대로 오버하는 사람은 나다. 그들보다 조금 더 살았다는 핑계로 그들과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게 떠오르면 몇 마디라도 덧붙이려고 입이 근질근질했다. 결국에는 한번 쥔 마이크는 쉽사리 내려놓지 않겠다는 사람처럼 신나게 말했던 것 같다.




5주간의 매 토요일 아침 두 시간 동안 우리는 각자의 내면을 드러내고 싶은 만큼만 드러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털어놓는 서로의 고민들을 가만히 들어줬다. 스터디가 끝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깍듯하게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네고 뿔뿔이 흩어지던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에게 나의 어떤 마음이 가닿았던 걸까? 이들과 더 친해져야겠다는 마음이 든 것도 아닌데, 나는 속으로 그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각자 모양대로

각자 원하는 삶을 살기를


다들 잘 지내기를 바라요.



다음 만남의 기약 없이 우리는 지하철역 입구에서 해맑게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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