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마음
기억을 되짚어보자. 새벽이었고 맥주를 두 캔 마셨다. 울고 싶지 않다고 몇 페이지에 걸쳐 우는 소리를 하는 인물이 나오는 소설을 조금 읽었고 전개가 가로막힌 원고를 붙들고 있었다. 졸렸고, 읽기 싫고, 쓰기는 더 싫었지만, 관두고 잠들 수 없었다. 어떻게든 써야 했다. 글이란 게 원래 마음처럼 써지지 않는 거라지만 이번엔 기이할 정도로 안 써졌다. 뭘 써야 할지 생각이 안 나는 것은 아니다. 생각은 났지만 적절한 문장이 떠오르지 않는 것도 아니다. 괜찮은 아이디어도 있었고 이렇게 쓰면 되겠다,라는 나름의 판단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타이핑을 하면 뜬금없는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이 써졌다.
-정용준 소설 <저스트 키딩> 중 해피엔딩 p.187-188
정용준이 쓴 짧고 작은 이야기책을 읽으며 내 마음을 어루만진다.
나는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 걸 좋아하고 쓰는 것을 좋아한다.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모를 마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며 자꾸 들여다본다. 그런 마음을 글로 쓰면 푸념 섞인 넋두리에 불가한 보잘것없는 작고 사소한 마음을 쓴 글이라 쓰고도 부끄러웠다.
그래서 대부분 이런 글은 나만 보는 일기장에 써 놓곤 하지. 후훗
매일 글쓰기를 600일 넘게 해 오면서 일기와 아닌 글을 구분 지어 쓰기란 내 능력으로 턱없이 부족한 일이라 일단 매일 쓰는 일에 사력을 다해 쓴다.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쓴다. 쓰고 싶은 마음을 최대한 지지하고 응원하려는 또 다른 마음을 따라 단어를 떠올리고 문장을 쓴다. 마음의 초고를 쓴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읽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