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 되면서 나는 변했다. 몸이 불편했지만, 그것이 내 반항의 이유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시절의 나는 세상 모든 것에 맞서 싸우려 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순한 아이였던 내가, 중학교 교문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날카로워졌다.
부모님께 대드는 일이 잦아졌다. "왜 나만 이래야 해요?" "이건 불공평해요!" 같은 말들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부모님의 걱정 어린 눈빛을 외면한 채, 나는 내 방식대로 살고 싶었다. 그분들의 조언은 잔소리로 들렸고, 관심은 간섭으로 느껴졌다. 식탁에서, 거실에서, 작은 일로도 목소리가 높아지곤 했다.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들이 얼마나 마음 아파하셨을지 알 것 같다. 부모님은 다만 나를 걱정하셨을 뿐인데,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더욱 힘들었다. 친구들과 많이 싸웠다. 누군가 나에게 좋지 않은 말을 하면, 나는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특히 내가 장애인이라고 놀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 말들은 칼처럼 날카로웠다. "야, 장애인", "너 걷는 거 봐", "체육시간에 뭐 하러 나와?" 같은 말들이 복도에서, 교실에서, 끊임없이 날아왔다.
처음에는 참으려 했다. 못 들은 척, 신경 쓰지 않는 척했다. 하지만 그런 말들이 반복될 때마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쌓여갔다. 결국 나는 폭발했다. 작은 말 한마디에도 불화의 씨앗을 키웠고, 결국 부모님이 학교로 오시는 일이 반복됐다. 중학교 3년 내내 그랬던 것 같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편하지 않았다. 상처받기 전에 먼저 가시를 세우는 것이 내 방식이었다.
어떤 친구가 농담처럼 던진 말에도 나는 진지하게 화를 냈다. "그게 무슨 말이야?"라며 따져 물었고, 상대방이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때로는 주먹다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내 몸이 불편하다는 것을 비웃는 아이들에게 나는 어떻게든 맞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내가 만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싸울 때마다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나였다. 선생님께 불려가고, 부모님이 학교에 오시고, 나는 또다시 문제아가 되었다.
복도에서, 교실에서, 작은 충돌들이 쌓여갔다. 선생님들도 나를 조심스럽게 대하셨던 것 같다. "또 문제가 생겼어요"라는 전화를 받고 학교로 오시는 부모님의 지친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먼저 시작한 게 아니에요. 쟤들이 먼저 나를 놀렸어요"라고 변명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도 알고 있었다. 내가 상황을 더 키웠다는 것을, 조금만 참았다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거라는 것을.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나를 놀리는 아이들이 정작 나쁜 의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였다. "장난이었어",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구니?"라는 말들. 그 말들이 나를 더 화나게 만들었다. 내 아픔을 장난으로 치부하는 것 같아서, 내가 과민반응하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 같아서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더 세게 반응했고, 그럴수록 친구들은 나를 피했다.
부모님께서는 또 다른 것으로 나를 걱정하셨다. "할 수 있는데 왜 안 하니?" 이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숙제든, 집안일이든, 할 수 있는 일들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게으름을 피웠고, 그것은 내가 가장 많이 혼났던 이유 중 하나였다.
방에 누워 핸드폰만 보거나,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는 날이 많았다. "숙제는 했니?" "방 정리 좀 해라" 같은 말들이 귓가를 맴돌았지만, 나는 "나중에요"라고 대답하며 미루기 일쑤였다. 학교에서 지친 마음을 추스를 힘도 없었고, 뭔가를 시작할 의욕도 나지 않았다. 몸이 불편한 것을 핑계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정말 못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다르다는 걸. 부모님도 그것을 아셨기에 더 답답해하셨을 것이다. "네가 하면 잘할 수 있는데, 왜 시도조차 안 하니?"라는 말씀에 나는 그저 고개를 돌렸다.
사실 나는 지쳐 있었다. 학교에서 나를 놀리는 아이들과 싸우고, 그로 인해 부모님께 실망을 드리고, 또 혼나고. 그런 악순환 속에서 나는 점점 더 무기력해졌다. 할 수 있는 일조차 하기 싫었다. 노력해봤자 어차피 학교에 가면 "장애인"이라는 말을 들을 거라고 생각하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나는 방황하고 있었다. 몸의 불편함과 십대의 혼란 속에서 나를 지키려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밀어냈다. 내 안의 불안과 분노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누군가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라면서도, 정작 나는 아무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세상이 나에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나도 세상에 거칠게 반응했다.
친구들의 놀림은 정말로 아팠다. 그 말들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이들도 미성숙했던 것뿐이다. 어떤 말이 상대를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몰랐던, 그저 무심코 내뱉은 말들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이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도 그 상황에서 조금 더 현명하게 대응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와 다르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배웠다. 화를 내는 것보다 대화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약함이 아니라 용기라는 것을. 부모님의 걱정과 친구들의 농담 뒤에 숨겨진 진심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말이 나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거친 시간들도 결국 나를 성장시킨 과정이었음을 안다.
중학생 시절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넌 충분히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부드러워져도 돼. 네가 싸워야 할 대상은 주변 사람들이 아니라 네 안의 두려움이야. 그리고 있잖아,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아. 그들의 손을 잡아도 괜찮아. 너를 놀리는 아이들의 말은 네 가치를 정의하지 못해. 넌 그 이상의 사람이야."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 시절의 상처와 실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때의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조금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그 아픔 속에서도 견뎌낸 나 자신이, 이제는 조금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