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할 수 없었던 선택

by 다희사랑

선택할 수 없었던 선택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교실은 대학 입시 이야기로 가득했다.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은 대학 원서를 낼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어떤 친구는 공대를, 어떤 친구는 경영학과를, 또 어떤 친구는 예체능 계열을 선택했다. 그들은 각자의 꿈과 적성을 고민하며 원서를 작성했고, 부모님과 선생님의 조언을 들으며 자신의 미래를 설계했다. 그들에게는 고민할 시간이 있었고, 선택할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권리가 있었다.

나는 달랐다. 천안에 있는 나사렛대학교, 장애인 전형, 신학과. 나는 그렇게 수시 원서를 냈다. 일반 전형이 아니었다. 내가 원해서 신학과를 선택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느냐'고. '다른 선택지는 없었느냐'고. 하지만 그 질문 자체가,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의 질문이다. 선택권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어쩌면 조금은 잔인한 질문이다.

뇌병변 장애인인 나는 머리는 멀쩡했다. 생각은 할 수 있었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으며, 친구들처럼 꿈도 있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이해하는 것도,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다른 친구들과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내 머릿속은 그 누구보다도 복잡하고 분주했을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것들, 되고 싶은 모습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으니까.

하지만 손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간단한 일상조차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웠다. 친구들이 당연하게 하는 것들, 펜을 잡고 글씨를 쓰는 것, 컴퓨터 키보드를 자유롭게 두드리는 것, 혼자 밥을 먹고 옷을 입는 것. 그 모든 것들이 내게는 높은 산을 오르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복지관에 갈 수도 없었다. 내가 가고 싶은 곳,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모두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마치 유리벽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보이지만 만질 수 없고, 알지만 경험할 수 없는.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천천히 진로를 고민하고, 이 학과 저 학과를 알아보고, 대학 설명회에 참석하며 캠퍼스를 둘러보고,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미래를 그릴 시간이 없었다. 원서 마감일은 다가오고 있었고,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장애인 전형을 실시하는 대학, 그중에서도 내가 물리적으로 다닐 수 있는 거리, 그리고 나를 받아줄 수 있는 학과. 그렇게 좁혀지고 좁혀진 끝에 남은 것이 나사렛대학교 신학과였다.

수시 원서를 내는 그 순간까지도, 나는 아무런 결정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친구들은 자신이 원하는 학과를 선택했고, 떨어질 것을 대비해 안전한 학과도 함께 지원했다. 그들은 전략을 세우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자신의 미래를 설계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전략도, 우선순위도 필요 없었다.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선택지조차 없었다. 그냥 주어진 길을 걸어야 했다.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내가 주인공이 아니었다는 것이 서러웠다. 대학 진학이라는, 누구에게나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그 순간에, 나는 구경꾼에 불과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정해진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 답답했다. 마치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친구들이 자신의 선택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이 학과를 선택했어', '이런 이유로 이 대학에 지원했어'라고 말할 때,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나도'라고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선택하지 않았으니까. 선택할 수 없었으니까.

밤마다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만약에'라는 가정을 수없이 떠올렸다. 만약 내 손이 자유로웠다면, 만약 내가 일반 전형으로 지원할 수 있었다면, 만약 내게도 친구들처럼 고민할 시간이 있었다면. 하지만 그 모든 '만약'은 그저 상상일 뿐이었다. 현실은 냉정했다. 나는 장애인이었고, 선택권은 없었으며, 주어진 길을 걸어야 했다.

그런데도 이상한 일이 하나 있었다. 원서를 제출하고 나서, 합격 통지서를 받고 나서, 나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서러움과 답답함 사이로, 작은 기대감 같은 것이 스며들었다. 어쩌면 이것도 나쁘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 비록 내가 선택한 길은 아니지만, 이 길 위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선택할 수 없었던 그 순간이,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또 다른 의미의 시작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장애인 전형이라는 틀 안에서, 신학과라는 낯선 길 위에서, 나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선택할 수 없었기에 오히려 더 절실하게, 더 간절하게, 주어진 것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꿈도, 희망도, 선택권도. 하지만 동시에, 그때의 나는 포기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바로 살아가겠다는 의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 비록 내가 원한 길은 아니지만, 이 길을 걸으며 나만의 의미를 찾겠다는 결심.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나는 선택할 수 없었다. 그것이 내가 마주한 현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선택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그 길을 어떻게 걸어갈 것인지는 여전히 내 몫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주어진 길이 내가 원한 길이 아닐지라도, 그 길 위에서 어떤 발자국을 남길 것인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선택할 수 없었던 그 순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내가 선택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주어진 것 안에서 최선을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 그리고 그 여정은, 비록 험난할지라도, 분명 나만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선택할 수 없었기에 더욱 소중한, 나만의 이야기

작가의 이전글주말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