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막내가 어렸을 때 일이다. 아이가 서너 살쯤이었을 때 잠실 주공아파트에 살았다. 집 근처 현대백화점 문화센터에 델타 샌드라는 수업이 있었다. 여러 육아서적에 심취했던 나는 모래놀이가 좋다고 해서 바로 신청했다.
문화센터 유아대상 40분 수업에서 인사와 준비, 설명 듣기, 마무리를 빼면 실제 아이가 모래를 만질 수 있는 시간은 20분 정도였다.
집중력을 매우 중요시하는 엄마 때문에 무엇을 하던 장시간 노는데 익숙했던 아이였다. 막 모래 놀이를 시작하려는데 "이제 정리하세요"라며 마무리하는 분위기에 나도 아이도 뜨악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첫 수업을 마치고 바로 데스크에 가서 환불을 신청했다.
집에 오자마자 인터파크에서 델타샌드 놀이세트를 주문했다. 가격도 문화센터 수강료랑 비슷했다.
드디어 아침 10시쯤 모래 놀이 세트가 배송됐다.
꼬맹이는 모래놀이 세트 안에 쭈그리고 앉아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나오지를 않았다.
택배를 받은 오전 10시부터 언제쯤 그만둘까 궁금해 시계와 아이를 번갈아 보던 나는 저녁 8시쯤이 되어서 결국 못 참고 "무릎 괜찮니?" "허리 안 아파?"라고 물었다.
걱정이 되어 작은 몸을 주물러줬다. 마음껏 놀이에 열중했던 아이를 안아주는데 뺨에도 입술에도 머리카락과 옷에도 온통 모래가 반짝였다. 항균 모래라 다행이었지만 베란다는 물론 아이가 지나간 자리는 모래천지였다. 아무렴 어떠랴.
모래를 만지는 촉감이 너무 좋았고 모래가 창의력에 그렇게 좋다는데 말이다. 나는 '깔끔'을 내려놓고 아이의 '즐거움'을 택했다.
아이는 커서도 놀기 대장이 되어서 온 동네를 쓸고 다녔다. 원래 걱정이 많고 노심초사하는 나였지만 아이만큼은 방목으로 자유롭게 키우고 싶었다.
아이가 초등생 시절 여름에는 7시까지 겨울은 6시까지 귀가시간을 정해주고 방과 후에 마음껏 놀게 했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귀가한 아이는 얼마나 열심히 놀았는지 검정 땀을 흘렸다. 이 무렵 내가 지어준 둘째의 별명은 '놀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다.
파자마 파티도 거의 매주 갔다. 누구네집에서 몇 명이 자는지 물어보면 매번 멤버는 바뀌는데 둘째는 고정멤버로 다 끼었다.
대신 귀가 후 저녁식사를 마치면 한두 시간씩 책을 읽었다. 너무 열심히 뛰어놀아서 움직일 힘도 없어 보였다. 아이는 누워서 좋아하는 만화책을 읽었다. <수학귀신>과 <보물찾기 시리즈>를 좋아해 읽고 또 읽었다.
지금도 여전히 친구가 너~~~ 무 많고 어디를 가서든 잘 노는 사람으로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