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치앙마이에 왔다. 요가 수업을 듣다가 한 친구를 만났다. 수업 후에 다음에 커피 한잔 같이 하자며 인사를 하고 헤어지려는데, 그 친구가 핸드폰을 오토바이에 둔 채로 온 것 같단다. 그런데 핸드폰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핸드폰 대신 비닐봉지 하나가 걸려있다. 비닐봉지를 열어보니 구불구불 적어 내려간 태국어와 숫자가 보인다. 아마 핸드폰을 보관하고 있으니 전화를 걸라는 것 같았다. 나의 핸드폰은 전화가 되지 않아서 근처 카페에 가서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그래서 함께 가게 된 카페. 카페 주인에게 메모를 보여주고 도움을 청했다. 다행히 전화 연결이 되어 핸드폰을 찾았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대화. 처음엔 요가 이야기였다. 누가 봐도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그는 전에는 꽤 수련을 한 것 같았다.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에서 지내다 일본, 중국 등에서 파일럿으로 일을 했다고 한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상하이에서 지내고 있었고, 코로나를 거치며 중국 생활이 갑갑하게 느껴져 잠시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다음날에도 요가 수업 후에 카페에 가서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주말에 빠이에 갈 예정이었고, 그 친구가 함께 가도 되냐고 물었다. 물론 동행자가 있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와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꽤 흥미로웠다. Empahty와 Sympathy 혹은 감정과 필요에 관한 것들도 있었고, 우리의 가정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친한 친구나 가족이 아닌 제삼자인 누군가에게만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 나의 이야기에 대해 어떤 잣대도 들이밀지 않고, 온전히 들어주기에 편한 그런 관계가 있다.
그렇게 며칠 뒤에 우리는 빠이에 가기로 했다. 나는 버스를 타고 갈 생각이었지만 그 친구가 차를 렌트해서 함께 타고 갔다. 여행을 왔지만 또 여행을 가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떠나기로 한 새벽녘에는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며칠 동안 알게 된 그 친구를 믿고 따라가도 될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나는 전부터 좀 대책이 없는 편이다.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들었는지 이때는 정말 진지하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만나기 몇 분 전, 친구에게 온 문자를 보고 조금 마음을 놓았다. 어떤 커피를 마실 거냐는 물음. 나는 그 메시지를 바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라테라고 답장을 했고, 그 친구는 그럴 줄 알았다며 이미 오는 중이라고 했다. 적어도 내가 걱정할 만한 사람은 아니구나라는 기분이 들었다.
빠이에 가는 길은 3시간가량, 엄청나게 굽이진 도로를 달려간다. 나는 전날 미리 멀미약을 사두었다. 그리고 차에 타자마자 멀미약의 반을 갈라 삼켰다. 가는 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나온 삶과 현재에 대한 이야기, 마음속에 있는 작은 박스에 관한 이야기 등. 사실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흥미로웠던 것은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한 것에 대해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emotion과 needs의 차이에 대해, 앞서 말했던 Empathy와 Sympathy에 대해. 그 누구도 그 주제를 나에게 건네었던 적은 없었고, 그것을 토대로 나의 지난 삶과 현재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항상 과거와 현재에 대해 생각을 하곤 하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치앙마이로 돌아오는 길에는 조금 더 마음 깊숙이 있던 이야기들을 꺼냈다. 그동안 잘 열어보지 않았던 숨겨진 상자에 대해.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그 상자를 살짝 꺼내서 열어본 그 후로 나는 조금 우울하다. 우울이라기보다 그 상자를 안고서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다. 상자의 입구는 다시 고이 닫아두었지만, 그 안에 들어있던 기억의 냄새들이 아직 공기 중에 퍼져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 냄새들이 사그라들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상자가 밀리고 밀려 다시 저 안으로 들어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을 안다. 그 친구는 그 상자를 비워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 그럴 생각이 없다. 그러고 싶지가 않다. 아니 영원히 놓아버리고 싶지가 않다. 그게 현재 나의 마음이다.
머리는 알지만 마음은 그러질 못하는 것. 그건 나의 잘못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 상자가 잘못된 것도 아니다. 살아가는 과정, 더 잘 살아가는 과정을 위한 배움이 아닐까. 나는 결혼을 했지만 사랑이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처음부터 그랬다. 이제는 다른 이가 아닌 나를 위해 살아가는 법을 알아가야 한다. 그래야 다른 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건강한 이기심. 그 친구를 만난 후로 나는 이기적으로 살아도 나쁜 것이 아니구나 깨달았다
하지만 혼자서는 상자를 비울 수 없다. 상자를 비우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내 상자에 있는 것들을 천천히 조금씩 그 상대에게 나누어주다 보면 결국은 가벼워지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에 언급했듯, 그 상자 안에는 주로 친한 친구나 가족과 나누기 어려운 것들이 들어있다. 먼저 그 상대를 찾는 것. 그게 우선이다. 그 후에는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비워낸다. 살을 급하게 빼면 요요가 오 듯, 이것도 마찬가지이다. 그 친구는 이곳에 있는 스님에게 간다고 했다. 스님을 찾아가기 전 미리 해야 할 말을 적어간다고도 덧붙였다. 지난번엔 세 시간 정도 이야기를 쏟아냈는데, 그중에 스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곳에 계셨다고 했다. 어떤 잣대도 어떤 해결법도 주지 않지만 그래서 좋을 때도 있다.
나의 첫 번째 스텝은 박스를 다시 꺼내오는 것이었다. 지금은 비워낼 생각이 없지만, 이렇게 한 동안 안고 있다 보면 나도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나눌 때가 오겠지 싶다. 과거의 일이 현재에도 그다지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을 때는 더더욱.
가끔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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