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럿이었던 친구, 스탠드업 코미디언, 유명한 모델 그리고 나
어제는 친구들과 저녁을 먹었다. 친구들이라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앞서 말했던 요가원에서 만났던 친구가 저녁을 먹자고 연락을 했다. 본인의 친구와 그의 여자친구도 온다고 했다. 나는 그 자리에 내가 왜 끼게 되었는가는 모르지만 공짜 저녁이니 나쁠 것은 없었다.
친구가 치앙마이 올드타운 근처의 일본식 바비큐 식당의 링크를 보냈다. 그리 멀지 않아서 걸어간다고 했다. 약속 시간이 되어도 그들은 오지 않았다. 그러다 저 멀리서 달려오는 오토바이 하나가 보였다. 그는 장소를 잘못 보내주었다고 했다. 그의 오토바이를 타고 완전히 다른 편에 있는 식당에 갔다. 그래도 그가 알아차려서 다행이었다. 왜냐하면 내 핸드폰은 전화가 되지 않으므로 하마터면 그냥 그곳에서 기다리다 지쳐 갈 참이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길에 그가 말했다. 친구의 여자친구는 엄청나게 유명한 모델이라고 말이다. 갑자기 모델이라니? 장소가 장소인지라 각국의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모델은 처음이었다. 식당에 도착해서 저 멀리 바라보니 기다란 사람들이 걸어온다. 정말 모델이었다.
그녀는 역시나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태국과 중국의 혼혈이라고 했다. 잡지에서만 보던 길쭉하고 가느다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남자 친구는 영국인. 둘은 런던에서 만났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녀는 무척 밝고 쾌활했다. 누구라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생기가 있었다. 그에 반해 그녀의 남자친구는 조금 더 무거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무겁다기보다는 무거운 대화 속에 농담을 섞는 사람이었다. 그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라고 했다. 내일 올드타운에서 그의 스탠드업 코미디쇼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순간 나는 생각했다.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 바보 같은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화려해 보이는 그들 사이에서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현재 회사 두 개를 가진 파일럿이었던 친구, 스탠드업 코미디언, 유명한 모델.
그리고 나는 무엇인가.
나는 현재 무직에 포르투갈에 살다가 비자 신청을 못해서 한국에 돌아가는 중에 태국을 여행하는 한국주부. 너무 적나라한 묘사일 수도 있지만 사실이다. 누가 봐도 그들과 나는 이상한 조합이었다. 물론 누구나 나름의 이야기를 가지고 살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화려하고 진했다. 적어도 그래 보였다. 나는 무엇인가.
이 세상 어딘가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직접 만나고 난 후부터 그 질문이 나를 쫓아다닌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만들어온 나의 이야기가 좋다. 화려하고 진하지는 않아도, 다채롭고 평화로운 이야기들, 가끔의 어드벤처. 그러고 보니 그들이 보기에 나 또한 이상한 조합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서른셋, 나는 내 삶을 사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