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rd day
쭈비리에서 우리 원래 몇 시에 출발하려고 했지? 우리 짐을 좀 줄여보자며 우체국에 갈 심산이었잖아. 하지만 토요일은 우체국이 빨리 닫을 것 같아서 5시에 출발하기로 했지만 우린 5시에 일어났지. 은주언니는 정말 우리가 5시에 떠날 줄 알고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방 밖에 있는 샤워실로 가서 대충 눈곱만 떼어내고 그 어두운 방을 헤집고 들어가서 희미한 핸드폰 플래시에 기댄 채 배낭을 메고 알베르게를 나섰지. 아침은 추웠어. 아마 고도가 조금 높아서 그랬을까? 추운 만큼 별은 참 많더라. 그때만큼 하늘을 많이 봤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 봐도 봐도 질리지 않을 정도였지. 그렇게 또 우리의 걸음은 시작되었어.
길을 걷다가 이 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깜깜했지. 그건 둘째 치더라도 너무 공사판인 거야. 걸으면서도 의문을 가졌지만 그때 마침 걷고 있는 순례자들이 있었어. 우리는 그렇게 그들에게 묻혀서 걸어갔지. 쭈비리에는 숙소가 많이 없어서 그다음 마을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많았어. 아일랜드에서 왔다던 그 아주머니들도 그랬고 말이야.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뒷모습은 아직 눈에 선한 그 사람들도 말이야.
우리는 걷다가 밥을 먹었고 수정언니와 므라찌를 만났지. 아 참, 내가 므라찌가 왜 므라찌인지 말 안 했던가? 무라찌는 원래 무라야마지만 별명이 므라찌라서 그렇게 되었어. 처음에는 종종 기억이 나지 않는 거야. 그래서 그 이름이 뭐였지 뭐여찌 무라찌 므라찌? 하하 이렇게 기억하고 했지. 그들은 오늘 아침 다섯 시쯤 출발한다고 했었어. 우리와 같이 짐을 보내려고 우체국에 들릴 모양이었거든. 그런데 한 시간이나 늦게 출발한 우리와 마주친 거야. 사실 우리가 걸음이 빠르기도 하고, 이날은 의식적으로 빨리 걷기도 했지. 그래서 아마 이날 하흥이는 무리를 좀 했던 것 같아. 무릎도 발도 말이야.
므라찌와 수정언니는 별똥별을 봤다며 정말 좋아했어. 그 후로 우리도 별똥별을 본 적이 있어. 까리온에 도착하던 날, 준이랑 하흥이랑 이떼로에서 이 길이 맞나 싶어 고래고래 선생님 이름을 부르며 걷던 그날 말이야. 그 아름답던 새벽하늘, 그 별.
사실 팜플로나는 처음 맞이하는 대도시여서 약간 들떠있었어. 우린 팜플로나에 도착하기 전 마을에서 우체국을 찾았고, 다행히 짐을 보낼 수 있었어. 수정언니가 알고 있는 산티아고에 있는 한국인 알베르게였지. 나보다 먼저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이 짐들을 부치면서 참 기분이 묘했어. 그전까지는 산티아고까지 갈 수 있을까? 가게 될까? 싶었는데 이제는 가야 할 이유가 생긴 것 같았거든. 이 짐을 찾기 위해서라도 기필코 가고야 말겠다는 이유말이야. 나에겐 하흥이 말고도 두 번째 이유가 생겼지.
우리는 우체국 바닥에 앉아서 배낭을 펼치고 어떤 짐을 보내야 할지 고민에 빠졌어. 나는 바지 두 개와 티셔츠 한 개 그리고 고집스럽게 고집했던 우산 하나를 뺐던 것 같아. 마음이 후련하더라. 이제 나와 마지막까지 함께 걸을 아이들만 남았고, 뭔가 책임감이 생겼어. 더 이상 아무것도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
세움이와 하흥이와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다가 우린 빵 가게를 마주했어. 빵 냄새가 굉장히 매혹적이더군. 근데 빵집에 들어가 놓고도 별달리 땡기는 빵이 없어서 다시 가게를 나와 다른 빵집을 찾아 헤맸어. 그리고 그 길로 팜플로나까지 빵집은 찾지 못했지. 역시 뭐든 눈에 보일 때 해야 하나 봐. 지금이 그때야! 나중은 없어.
독일에 사는 한인 부부를 만났어. 쭈비리에서 와인을 권하셨었지. 그리고 이 날도 저녁때 우리에게 밥과 국을 해주셨어. 이후에도 이 길 위에서 참 많이 만났어. 하흥이와 헤어져서 너와 걸을 때도 이 분들을 뵈면 마음이 따뜻해졌어. 항상 나에게 물으셨고 나는 나 스스로에게 각인시키듯 대답했지. “하흥이는 오고 있어요. 하흥이는 오고 있어요. 산티아고에서 만날 거예요 “ 이렇게 나에게 주문을 거는 것 같았거든. 내가 외롭지 않게, 포기하지 않게 말이야. 이렇게 내가 산티아고에 가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다시 네가 되었지.
팜플로나에 도착해서 구시가지에 들어가 보니 사람들이 정말 많았어. 축구 경기가 있었던 모양이었어. 바마다 사람들이 맥주를 들고 신이 나 있었지. 우리는 이곳에 머물지, 아니면 다음 도시로 갈지 고민을 잠깐 했던 것 같아. 그러다가 일단 도시나 둘러보자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두가 알베르게를 찾고 있었지.
이 날은 독일 어머니, 아버지 덕분에 숙소를 쉽게 찾을 수 있었어. 기나긴 줄을 이겨낸 뒤에 침대를 배정받고, 씻고 빨래를 널었지. 그리고 점심을 때울 요량으로 밖으로 향했던 것 같아. 햇살이 참 좋았어. 그런데 이 날은 다리가 많이 아프더라. 매일 이렇게 우리는 까미노가 끝나고 다시 까미노를 시작하는 것 같았어. 진짜 까미노를 말이야.
마을을 조금 구경한 뒤에 먹을거리와 저녁 재료를 사 왔어. 저녁은 므라찌가 오꼬노미야끼를 해준다고 했어. 스페인에서 일본 현지인이 만들어주는 오꼬노미야끼를 먹게 될 줄이야! 상상이라도 해봤겠니!
장을 보고 나서 우리는 숙소에 돌아왔어. 나는 므라찌와 세움이와 맥주를 마셨어. 맥주를 잘 못하는 하흥이는 한 두 모금이었지만 므라찌는 잘 마시더라. 그래서 나는 좀 신이 났던 것 같아. 함께 마셔줄 사람이 생기니 말이야.
므라찌가 오꼬노미야끼를 해줬어. 근데 정말 맛있더라. 재료도 충분치 않았는데 말이야. 역시 현지인은 다르구나 생각했지. 몇 판을 먹었는지 몰라. 오꼬노미야끼와 독일어머니가 해주신 밥과 국, 그리고 누룽지와 맥주. 너무나 훌륭한 저녁이었어. 무얼 먹을까 고민한 만큼, 슈퍼메르까르도를 찾아서 헤맨 만큼, 므라찌가 뜨거운 불판에서 오꼬노미야끼를 몇 판이고 구워낸 수고만큼 정말 훌륭했어.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나. 아무것도 아닌 이렇게 소소했던 일상이 말이야. 뭔가 화려하고 거창한 것 말고 길을 걷다 만나게 되는 별똥별이나 홀로 어둠을 걷다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그리고 이렇게 정성스레 차린 음식 같은 것 말이야.
지금은 왜 잊고 있을까? 지금 또한 소중한 나의 순간일 텐데 말이야.
다시 한번 고마워 므라찌, 너의 오꼬노미야끼를 떠올릴 때면 지금 나의 일상 또한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우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