봤는지 안 봤는지도 가물가물할 정도로, 당시 <토이스토리>는 내게 그렇게 깊은 인상을 준 영화는 아니었다. 첫 시리즈가나온 1995년은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전이니, 기억이 잘 안 나는 게 어쩜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이후 <토이스토리 2>가 1999년에 나오고, 웬일인지 <토이 스토리 3>는 그보다 한참 뒤인 2010년에 개봉한다. 그리고 역시나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올해 6월, <토이 스토리 4>가 드디어 개봉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학생 때부터 잘 보지 않았던 애니메이션을, 어른이 되니 더 집착하게 되는 것 같다. <토이 스토리 4>를 보겠단 일념으로 금요일에 <토이스토리>복습(보다 보니 이미 봤던 기억이 났지만, 중간중간 처음 본 듯 낯선 장면도 많았다.)하고, 토요일엔시리즈 2와 3을연달아 감상하는 스케줄을 소화해냈다.
그리고 대망의 일요일. <토이 스토리 4>를 맞이하기 위해 TPO(Time, Place, Occasion)에 맞춰 데님 오버롤즈를 입고 영화관으로 간 나는, 결국 우는 얼굴로 극장에서 나오고야 말았다. 엘린 컵을 가슴에 품고서.
애니메이션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사실적인
처음 내 눈물샘을 자극한 건 우디와 친구들이 아닌 개비개비의에피소드였다. 보니가 모두를 잘 보살펴줄 거라며더키와 버니, 그리고 듀크 카붐까지 우디 일행과 함께다시 캠핑카로정신없이 뛰어가는 사이, 개비개비는 발걸음을 멈추고 카니발 천막 사이에 숨어 울고 있는 아이를 발견한다.
그때였다. 울고 있는 그 아이의 표정이 너무서러워 보였다. 그때부터 코가 시큰거리더니, 우디와 버즈의 이별 장면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손으론 눈물을 훔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결국은정적이 흐르는 영화관 안에서물티슈를 꺼내, 마르지 말라고 붙여놓은스티커를 쫘악-소리를 내며 떼서라도턱까지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야했다.
주인공도 조연도, 심지어 '토이 스토리'의 토이( 장난감)도 아닌, 짧은 순간얼굴을 비췄던 그 아이를 보며 눈시울이 붉어진 이유는 뭘까. 길을 잃었던 선명한 기억은 없지만, 어렸을 때 순간 주위를 돌아보니 엄마와 아빠가 없을 때의 그 느낌. 고립되어 슬프고도 무서운 그 감정을 너무도 사실적으로 잘 살렸던 게 그 이유가 아닐까.
전작에서도 그 생동감은 나무랄 데 없어 이야기에 푹 빠지게 했지만,이번엔 정말 모든 디테일들이 진짜보다 더 진짜 같았다. 어느 순간 그들을 장난감이 아닌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로. 그리고 <토이 스토리 3> 이후 이번 시리즈가 나오기까지의 9년이라는 긴 세월이, 장난감들을 살아 숨 쉬게 하는데 걸린 시간이었단 걸 알게 됐다.
아이들을 위한 영화, 어른들을 위한 동화
<토이스토리 4>를보기 위해 정주행 한 전 시리즈들은,완전하지 않아 중간이 뚝뚝 끊어지는 춥지만 행복했던 옛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지금도 강아지와 고양이를 비롯한 모든 동물들을 좋아하지만, 당시의 나는 강아지를 그 무엇보다 사랑했다. 유치원을 갓 졸업한 초등학생 시절 어느 크리스마스,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두 팔 가득 달마시안을 안고 아빠와 함께 집에 돌아오던 기억이 난다. 키는 더 작았지만 몸집은 당시의 나만큼이나 컸던 그 달마시안은 <101마리 달마시안>의 풍고였다.풍고는 항상 듬직하게 내 옆에 앉아있었고, 나중엔 그에게 작은 달마시안 아기도 데려다줬었다.
어른이 돼서토이 스토리, 장난감들의 이야기에 집착하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그추억들 때문인 것 같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불구하고 딸이 좋아한단 이유로커다란 달마시안 인형을사준아빠.술을 마시고 오는 늦은 귀갓길엔 왠지 모를 미안함에,장난감 가게에 들러 바비인형을사 와 머리맡에 놓아주셨던 아빠.그 따뜻했던 아빠의 마음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앤디와 비슷했던 나의 어린 시절도. 하지만 앤디가 그랬듯 난 어릴 적 친구들을 끝까지 기억하진 못했다. 문지방에 키를 재던 시절내 베프였던 그들을, 키가 더 자라지 않는 지금은 아주 가끔 지난 추억 이야기의 소재로만 꺼낸다는 사실이 날카롭게 내 가슴을 찔렀다.아마 그들은 아직도 우리 집 어딘가에서 내가 다시 놀아주길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냥, 그냥 우린 모두 친구야
영화 속 장난감들을 보고 있다 보면, 그들이 토이(장난감)가 아니라 사람으로 느껴진다.보통 멈춰있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장난감들이 움직이고 말을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의지로 행동한다. 우정을 위해 결단을 내리고 희생도 마다하지 않으며, 사랑을 위해 용기를 내고 위험을 감수한다.
장난감들은 바비인형처럼 사람을 본뜬 모양부터, 토끼나 곰 같은 동물, 삐릿 삐릿-거리는 로봇, 그리고 무생물인 자동차, 전화기까지 다양하다. 그런 그들을 인간 세계로 가져와보자. 사람과 강아지 간의 관계는 주인과 반려동물이 되고, 자동차는 사람이 타고 다니는 물건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들만의 세상에선 아니다. 그들은 종류도, 생김새도, 나이도 다 다르지만, '형-동생'이나 '선배-후배'가 아니다. 그냥 친구다.
각자의 다른 생김새는 때론 활동에 제약을준다. 보핍의 양들은 몸이 붙어서 항상 같이 다녀야 하고,허리에 스프링이 달린 강아지는 저- 뒤에 달린 엉덩이 덕에 남들보다 뒤처지기 일쑤다. 감자 머리는 툭하면 눈, 코, 입이 떨어져 버려 그걸 다시 주워 담기 바쁘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다르거나 틀리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다른 장난감들에게는 그저 빌리, 고트, 그러프(솔직히 인터넷으로 찾아봤다.)이며, 슬링키이고, 또 미스터 포테이토 헤드인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소리상자에 이상이 있어 자신만의 아이(kids)를 못 만났다고 생각하는 개비개비도, 인형 세계에선 집사 여럿을 거느리고 있는 어엿한 숙녀다. 그런 그녀를 불량품이라고 말하는 건 개비개비 자신과 사람들뿐이다.<토이 스토리>에서 우디가미리 입력된 우주인 콘셉트에 취해있던 버즈를 보고 했던 말이 이 모두를 함축한다.
넌 그냥 장난감이라고!
그렇게 다 같은 장난감이란 사실로 그들은 하나가 된다.
결국 이번 시리즈도 우디의 이야기로 끝났다. <토이 스토리>가 우디에게 새로운 친구, 버즈가 생긴 것으로 끝났다면, <토이 스토리 2>에선우디가 친구들과 헤어질뻔한 첫 사건이 일어나지만, 대신 새로운 친구를 앤디의 집으로 데려오게 된다. 이후 <토이 스토리 3>에서 우디는 끝내 오랫동안 그의 아이였던 앤디를 떠난다. 앤디에게 선택받아 함께 대학교에 갈 수 있었으나, 그는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은 맘에 앤디와의 이별을 택한다.
그리고 이번 시리즈에서, 우디는 끝내 오랜 친구들과 이별한다. 복선처럼 첫 장면에 나온 보 핍과의 이별은, 우디가 친구들과 캠핑카에 오르는 대신 멀리서 그런 그를 지켜보는 보핍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이어진다. 더 이상 보니에게 해줄 일이 없다는 걸 깨달은 그는, 보핍과 자유로이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삶을 택한다.
다음엔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보핍과 우디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겪는 모험 이야기도 좋겠다 하지만 이건 어떨까,바로 알렌의 스핀오프(spin-off) 영화.이건 '우디' 스토리가 아닌 '토이' 스토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