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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 Jul 02. 2019

꺼져버린 99의 진심

나만 몰랐던 우리의 관계


그와의 꿈같던 LA 여행이 끝나자 바로 일상으로 복귀할 일만 남았다. 일요일 아침에 도착한 우리는 고양이 호텔에 맡긴 아이들을 데려온 후, 시차 적응이고 뭐고 저녁은 생각도 않고 바로 침대에 몸을 뉘었다. 그리고 밖이 깜깜해진 후에야 일어나 저녁을 먹고는 또 금방 잠이 들었다. 낮에 자서 저녁에 잠이 안 올까 걱정했지만 장거리 비행은 그런 우려를 말끔히 씻을 정도로 고단했다.


다음날 아침, 오랜만에 출근해 린 메일을 보고 있는데 그에게 연락이 왔다. 월요일에 바로 회사 워크숍이 있던 그는  가고 있는데 곧 연락이 안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워크숍 중에 핸드폰을 압수하는 건가? 했는데 아니었다. 너무 산골이라 핸드폰이 안 터진단 거였다. 


그렇게 그는 세상과 떨어져 1박 2일 명상 캠프에 갔다. 다행히 형식적인 발표를 몇 번 하고 대낮부터 술을 홀짝이다 초저녁 즈음 모두 거하게 취해버리는 류의 워크숍은 아니었. 하지만 명상이라니? 요즘은 플레이이라고 같이 공예 체험을 하거나 공연, 야구 등을 관람하는 경우도 많던데, 지루할 거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와 동시에 또 하나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명상하면서 우리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봐."


다행히 그는 숙소 발코니에선 핸드폰이 잘 터진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공동 일과가 끝나고 나면 모기에 뜯겨가며 잠시 나와 카톡을 주고받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 핸드폰 게임에 열중하는 일을 반복했다. 그렇게 그가 없는 1박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고, 화요일엔 돌아온 그와 여느 때처럼 저녁을 같이 하게 되었다.


요즘 식단에서 고기를 좀 줄이려고 하는 터라 생각 끝에 생선구이집을 찾아갔다. 요즘 뜨는 소위 핫하고 힙한 가게는 아닌 게 분명해 보였지만  괜찮은지 사람이 꽤 있었고, 우리 바로 뒤에 들어온 커플은 자주 오는 듯 메뉴판은 보지도 않고 술술 주문을 했다. "A세트에 삼치랑 된장찌개로 주세요." 우리도 곧 찌개만 김치로 바꿔 똑같이 주문을 했다.


메뉴판을 옆으로 치우고 컵 두 개를 꺼내 물을 따르는 그를 향해 물었다. "생각해봤어?" 그는 예상보다 이른 질문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다 곧 입을 열었다. 


"근데... 이건 아닌 것 같아."


그가 우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한 내 말에 담긴 맘을 알아챈 듯, 그게 우리 관계의 발전인 '결혼'을 뜻한다는 걸 알고 있단 사실에 놀랐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그 대답이 너무 아프단 사실이었다. 담이 49, 진담이 51이었던 질문에 대한 그의 짧고도 단순한 대답은... 생각보다 아팠다.


그냥 순간 떠오른 생각이었고 깊은 고민 없이 툭 뱉은 말이었는데, 그의 빠르고 단호한 결론에 많이 놀랐다. 아마 진심은 51이 아닌 99였을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그와 한집에 사는 상상을  기다렸다는 듯 미소가 슬며시 새어 나왔으니까.




*. 다음 글 <생선구이집이 뭐 어때서!>에 이어집니다. 

*. 표지 사진 : Photo by Marius Gerom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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