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hl Nov 01. 2020

생선구이집이 뭐 어때서!

나를 울린 내 남자의 로망

*. 이전 글 <꺼져버린 99의 진심>에 이어집니다. 


이어 내가 좋아하는 진밥이 양은그릇에 소복하게 담겨 나오고,  익어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삼치가 노란 자태를 드러냈지만 손이 가지 않았다. 고픈 배를 채우려 되는대로 입으로 가져가다 속이 적당히 차자 수저를 내려다. 중간중간 그가 던지는 질문 미쳐 뇌에 닿지 못하고 귀가 들리는 데로 해석해 입으로 전했다


그렇게 로 한  반복되자 그는 그제야 내 안색을 살피며 "왜 그래?"라고 물었다. '왜 그러냐고? 그걸 정말 몰라서 물어?' 속으로 외쳤지만 겉으론 내색하지 않으려 입을 꾹 물었다. 방금 나를 뻥차 놓고 아무렇지 않은 척 내 안부를 묻는 그가 너무 밉고 화가 났다. 나는 연애용이고 결혼은 딴 사람이랑 한다는 건가? 이런저런 생각이 들자 더 비참해졌다. 


결국 연하의 남자 친구에게 결혼을 갈구하는 나이 많은 여자가 돼버렸단 생각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가장 친한 친구마저 속였던 지난 날들, "결혼? 하게 되면 하는 거지, 아님 말고~"라고 거리낌 없이 말했던 순간들이 모두 무너져 내렸다. 애써 감춰왔던 외로움, 누군가에게 기대고픈 마음, 그리고 을 열면 부엌이 아닌 현관이 보이는 집에서의 단란 가정을 꿈꾸던 소망이 모두 까발려졌다. 


마치 상어 떼에게 아름다운 고기를 다 뺏겨버린 노인처럼 세월에 젊음을 다 뺏겨버리고 패자 된 것 같았다.


"아니, 생선구이집은 좀 아닌 것 같다구~"


응? 침묵 속에 던져진 그의 말은 긴장을 늦추면 바로 눈물이 쏟아져버릴 것 같아 입술을 꽉 깨물며 바닥만 보고 있던 비련의 여주인공 분위기에 젖은 나를 0.1초 만에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 그의 말인즉 우리 관계의 미래, 즉 결혼에 대해 말하기에 생선구이집은 좀 아니지 않냐는 거였다. 그러면서 "주말에 집에서 와인 한잔 마시면서 얘기할까? 아님 레스토랑을 예약해둘까?"라 덧붙였다.


그는 그동안 우리가 각자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입밖엔 꺼낸 적 없었던 그 이야기를 생선 냄새가 나는 곳보단 더 근사한 서 하고 싶었던 것이다. 생선구이집이 뭐 어때서! 프러포즈도 아니고 냥 얘기만 하는 건데 장소가 무슨 상관이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만의 로망이겠거니 지만... 


꼭 그걸 그렇게 말했어야만 했냐, 그에게 따졌. 그냥 '여기서 얘기하긴 좀 그러니까, 이따 나가서 얘기하자.'고 하면 됐을걸. 그렇게 단호박처럼 '이건 아닌 것 같다'니, 그 '이'이 지 정확히 얘길 했어야 될 거 아냐.


인지 슬픔인지, 아님 둘 다인지 모르겠던 그 감정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옆에 찰싹 붙어 계속 그런 게 아니었다고 는 그의 말에 집에 다 와선 기분이 살짝 풀어지긴 했지만, 나는 끝내 그의 손하트에 답하지 않고 문을 닫았다. 


얘길 들은 친구는 결혼 이야기를 하기 위해 레스토랑을 예약하려는 그를 보고 멋있다고 했지만 난 그 말에 동의하지 못했다. 무심결에 그의 본심 - 결혼 No - 이 튀어나왔던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계속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 그는 예전부터 나와의 결혼을 생각했지만 언제 할 것인가 막연했던 거라며, 이제부터 찬찬히 준비를 해보자고 했다. 내 마음은 비로소  말을 믿기로 했고 나는 다시 그가 보내는 손하트에 답하기 시작했다.




*. 표지 사진 : Photo by Denis Agati on Unsplash



이전 21화 꺼져버린 99의 진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