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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 Nov 04. 2019

왜 여기서 화장실 냄새가 나?

화장실을 가지 않는 남자에 대하여

  어느 TV 프로그램에 배우 김희선이 나와 남편 얘길 한 적이 있다. 배우자와 방귀나 트림을 텄냐는 질문에 그녀는 혼자 방귀를 텄다며 남편은 아직도 화장실에서 물을 틀어놓고 볼 일을 본다고 했다. 같이 사는 부부 사이에도 생리현상의 공개(?)가 이렇게 조심스러운데 따로 사는 연인들은 어떨까?


이제 만난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우리도 아직 방귀를 트지 않았다. 고백하건대 가끔 소리 없는 방귀를 뀐 적은 있지만 대놓고 부르릉쿠왕쾅! 한 적은 없다. 놀라운 건 따로 있다. 본인은 화장실에 가지 않는다는 그의 주장이다.


화장실에 안 간다고? 요정이야 뭐야? 싶지만 그는 번복하지 않는다. 가끔 밖에서 화장실에 간다고 할 때 "화장실 안 간다며, 왜 가는 거야?"라고 물으면, "손 씻으러~"라며 능글맞게 웃어 보인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이지만 화장실에 가는 걸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귀여워 이제 그려니 한다.


그런 그의 정체가 들통날 뻔한 적이 있다. 지난 8월, 2주간의 미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날이었다. 11시간이 넘는 비행을 마치고 새벽 4시에 인천공항에 떨어졌지만, 끝나지 않은 여행은 캐리어를 찾아가라며 컨베이어 벨트 앞으로 우리를 불렀다.


다행히 근처에 벤치가 있어 앉아 기다리다 비행 중 화장실을 한 번도 가지 않았단 걸 깨달았다. 비행기 화장실이 그렇지 않은가, 몇 시간 동안 십 명이 같이 쓰다 보니 관리도 잘 안되고 볼일을 보는 도중 기체가 흔들리기라도 하면....! 아찔하다. 문을 여는 순간 스릴이 넘치는 곳이라 그냥 꾹 참고 버텼다.


그러다 땅을 밟았단 안도감에 다시 신호가 온 것이다. 그에게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하고 길을 나는데 그 넓은 공간에 화장실이 한 개도 보이지 않았다. 12시간을 참았는데 30분을 더 못 기다리랴. 어차피 캐리어만 찾나가면 화장실이 많을 테니 그때 가야겠단 생각에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벤치로 돌아와 앉으니 갑자기 이상한 냄새가 났다. 모니아 냄새가 섞인 그 시큼하면서 구수한... 화장실 냄새! 으잉? 못 찾은 화장실이 실은 코앞에 있었던 건가?라고 생각하며 남자 친구에게 물었다. "왜 여기서 화장실 냄새가 나지?" 


그러자 갑자기 얼굴이 빨개진 그가 더듬으며 말했다. "으응????" 그때 확실히 알았다. 그도 사람이라는 걸. 방귀도 뀌고 화장실도 간다는 걸. 물론 원래도 알고 있었지만 그걸 좀 더 찌~인하게 알게 되었달까.


알고 보니 그도 비행 내내 화장실에 가는 걸 참고 있었고, 내가 화장실에 가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 급한 대로 가스를 먼저(?) 배출한 것이었다. 문제는 그의 예상과 달리 내가 화장실을 찾지 못해 너무 빨리 돌아왔다는 것. 덕분에 그의 흔적 미처 대기충분히 섞이지 못하고 그 주변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좁은 비행기 안에서 새우잠을 잔 터라 비몽사몽 한 와중에 신나게 웃었다. 현실적인 냄새에 웃음이 났고 당황한 그의 모습에 또 웃음이 났다. 웃음은 전파된다고, 신나게 웃고 있으니 그도 나를 따라 웃었다. 그렇게 둘이 한참을 웃다 보니 어느새  코도 낯선 냄새에 적응한 듯했다.

 

언젠화장실에 간다는  스스로 인정하게 될까? 우리도 엄마와 아빠처럼 같이 tv를 보며 서슴없이 방귀를 뿡뿡 뀌는 사이가 될까? 우리의 미래가 궁금해졌다. 



*. 표지 사진 : Photo by Franck V.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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