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생일을 맞아 제주도에 다녀왔다.아직 대중교통이 많이 발달되지 않아 운전이 필수라는 제주지만, 남자 친구와 난 둘 다 장롱면허라 남들 다 하는 렌트를 못했다. 처음엔 그동안 운전도 안 배우고 뭐했냔 생각이 들어 그가 좀 밉기도 하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대신 주로 택시를 타고 다녔는데, 호텔에서 오설록에 갈 땐 거리가 너무 가까워 택시가 안 잡히기도 했다. 몇 분을 기다리다 호텔에서 실수로 더블 부킹을 하는 바람에 겨우 공칠뻔한 택시를 타게 됐는데, 그 순간 공항 가는 콜이 오는 바람에 기사 아저씨의 볼멘소리를 들어야 했다. 아, 공항 가는 거 왔는데 이거 가지도 못하고..
여행 내내 우중충했던 제주 날씨. 하지만 보슬비는 맞을만 했다. 사진을 건지기 위해서라면..ㅎㅎ
그러다 첫날 저녁, 택시를 타고 올레시장으로 가는 길. 남자 친구와 같이 뒷좌석에 앉아 핸드폰으로 뭘 구경할지 검색을 하고 있는데, 너무 조용해서 고개를 살짝 돌려보니 어느새 그는 옆에서 입을 벌리고 딥슬립에 빠져있었다. 그런 그를 보고 있자니, 모처럼 쉬는 주말인데 운전할 필요 없이 이동시간에 둘 다 쉴 수 있는 것도 좋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도착해서는 문을 닫을 시간이 다 됐지만 여전히 활기찬 시장을 구경했다. 비가 왔지만 다행히 천장이 막혀있어, 하르방 모양의 플라스틱 통에 담긴 새콤달콤한 천혜향 즙을 마시며 슬렁슬렁 걷다 보니 기분이 좋았다.
진짜 달고 맛있었던 100% 천혜향 주스
구경을 끝내곤 차가 있었다면 넣어놨을 우산이 없어 비를 맞으며 택시가 잡힐만한 곳으로 가야 했고, 택시에 타서는 숙소에 가서 먹으려고 포장해온 마농 치킨 냄새가 차 안을 가득 메워 살짝 신경이 쓰였지만 괜찮았다. 우리는 번갈아 잠이 들었고, 호텔에 도착할 때쯤엔 재충전이 돼 맛있는 치킨을 즐기며 첫날을 밤까지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
섬에 왔으니 바다는 보고 가야 할 것 같아 이튿날 곽지해수욕장에 가기로 했는데, 다행히 원래 있던 곳에서 바로 가는 버스가 있어 이번엔 버스를 타 보기로 했다. 우려와 달리 그저 핸드폰을 내밀어 간단히 버스비를 지불할 수 있었고(제주 버스도 티머니 결제가 가능하다!), 버스는 우리를 생각보다 빨리 목적지에 바래다줬다. 아, 물론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잘 못 잔다는(본인 피셜) 남자 친구는 버스에서도 헤드뱅잉을 하며 참 잘 잤다.
택시를 타서 또 하나 좋았던 점은 현지인인 기사님들에게 여행 꿀팁을 전수받을 수 있다는 거다.첫날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길에 만난 기사님은 제주도의 먹을거리를 소개해주셨다. 마침 그곳에서 지내고 있는 남자 친구의 친구를 만나 갈치구이를 먹으러 갈 거라고 하니, 갈치도 좋지만 지금은 은어가 철이라며 은어회를 추천해주셨다.
그리고 제주도에 있는 대부분의 흑돼지는 사실 외국에서 건너온 돼지와의 잡종으로 개량된 것인데, 유일하게 토종 흑돼지를 파는 곳이 있다며 OO 가든이란 곳을 알려주셨다. (천연기념물 550호이며, 한 달에 네다섯 마리만 잡는다는 말에 왠지 식욕이 떨어져 가진 않았지만...)
그냥 막 이렇게 돌아다니던 공작새. 바로 앞에서 사진을 찍어도 우리는 본채만채 마이웨이였던 녀석.
한림공원에 가려고 잡은 택시의 기사님은 여길 어떻게 아냐며, 정말 볼 것도 많고 좋다고 극찬을 하셨다. 본인도 수십 번을 가봤는데 갈 때마다 다른 느낌이 든다며, 제주도에 자주 오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그리고 인터넷에 나오는 카멜OO 힐은 절대 가지 말라며, 한림공원이 그에 비해 몇 십배는 크고 사진 찍을 곳도 많은데 사람들이 잘 모른다고 안타까워하셨다.
과연 직접 가보니 한림공원은 정말 크고 볼 게 많았다. 특히 빨간 꽃들이 가득 있던 하우스와 시원한 인공 폭포, 곳곳에 있던 연못과 그 안에 살던 잉어와 오리들을 보는 게 참 좋았다. 하지만 중간중간에 있던 유리로 된 케이지 안에 놓인 파충류들을 보니 안타까웠다. 그 좁은 공간에서 혼자 무슨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내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 다음번에도 뚜벅이 여행을 갈 거냐고? 답은 '아니올시다'다.운전할 필요가 없어 이동시간을 휴식시간으로 쓸 수 있었고, 택시 기사 아저씨들을 통해 제주의 진짜배기들을 알 수 있었지만, 2% 부족했기 때문이다.
컨버터블 카를 렌트해서 제주의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해안 도로를 달리고 싶고, 길을 가다 멈춰 서서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뒤로하고 멋진 사진도 찍고 싶고, 외곽에 있는 독특한 카페에서 남자 친구와 함께 주인의 센스를 감탄하고 싶다. 게다가 우리가 그동안 쓴 택시비보다, 2박 3일 렌트비가 훨씬 싸다!
다음 제주 여행 전까진 둘 다 운전연수를 받아 한 번은 내가, 한 번은 남자 친구가 운전을 하고 상대방은 쉴 수 있도록 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한다. 뭐, 계속 같이 음악을 들으며 모든 순간을 즐기는 것도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