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밖은 호주, 문 안은 한국 : 한 번에 두 여행

브리즈번에서 타우포까지#3

by Dahl

*. 본 글은 <브리즈번에서 타우포까지> 시리즈로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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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차를 타고 얼마쯤 달리자 눈에 띄게 한산한 도로가 나왔다. 그리고 양옆으로 채워진 곳보다 빈 곳이 많은, 넓은 주차장이 딸린 상점들과 드문드문 보이는 집들을 지나 오빠네 집에 도착했다. 대부분이 1층에 작은 정원이 딸린 주택가다. 높은 빌딩이나 아파트가 없어서인지, 너무 탁 트인 뷰가 당황스러우리만치 낯설었다.


오빠네 집에서 바라본 마을

대문으로 들어가니 조그마한 마당이 있었고, 구석에 차를 데고 들어가니 문 앞에 크고 작은 신발들이 조르르 놓여있었다. 거기에 내 신발을 더하고 들어가니 저 끝에 피아노가 보였고, 그 위에 오빠의 가족사진이 걸려있었다.

문 밖은 낯선 호주였지만,
문 안은 한국이자 가족이었다.


결혼식에도 가지 못해 처음 본 새언니는 나를 "아가씨~"라 부르며 친근하게 대해주었고, 마찬가지로 사진으로만 보던 조카들도 "고모"라 부르며 환한 얼굴로 나를 맞아주었다. 오빠는 새언니에게 내 긴 여정을 얘기하며 웃었고 -아 글쎄, 비행기를 두 번이나 갈아탔데!- 나도 이번 비행을 통해 역시 직항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스탑오버를 이용해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밖에 나가기로 했다. 긴 비행을 마치고 도착했지만 잠을 청하기엔 시간이 너무 일렀고, 오빠 나를 위해 오후 반차를 낸 상태였기 때문이다. 도 내내 비행기에서 찌뿌둥하게 있다 오니, 시차 적응도 할 겸 몸도 움직이고 햇볕도 쬐고 싶었다.


뉴 팜(New farm)

그렇게 우리 차를 타고 얼마 안 가 뉴 팜 도착했다. 다행히 내가 도착한 이 마켓이 서는 날이었고, 나는 처음으로 영화에서만 보던 화사한 햇살 아래에 생동감 넘치는 로컬 마켓을 구경하게 됐다. 동남아의 야시장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각자 직접 농장에서 기른 농산물을 가져와 싸게 팔 있었고, 중간중간 즉석에서 음식을 만들거나 커피를 내려 파는 트럭도 있었다.

글루텐 프리 도넛과 아보카도
여기서 시나몬롤을 사 먹었는데 너무 달았다;

여기저기 눈을 돌리며 부지런히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은 후, 간단히 점심을 때우기 위해 먹을거리와 커피를 사서 근처 뉴 팜 공원에 자리를 잡았다. 언니가 준비해온 돗자리를 펴고 둘러앉아 주위를 보니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데리고, 혹은 친구들과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강아지를 데려온 사람들도 꽤 있었는데, 유난히 따스했던 햇살 때문이었을까, 하나같이 여유로운 분위기였다. 니와 오빠에겐 일상이었고, 나에겐 한강공원과는 다른 또 하나의 낯지만 부러운 모습이었다.



적당히 먹고 일어나 조카들이 원하는 대로, 걸어서 근처 강으로 갔다. 아이들은 그 옆에서 모래로 장난을 치기도 하고 물에 돌을 던지기도 했다. 그때 어쩌다 조카의 유모차를 내가 밀게 됐는데, 가만히 있는 시율(조카2)이를 보고 새언니가 말했다. "어머, 원래 다른 사람이 민다고 하면 그렇게 싫어하는데... 아가씨가 마음에 드나 봐요~" 아직 고모란 호칭이 익숙지 않아 자주 나를 '이모'라고 불렀지만, 그래도 처음 만난 조카가 나를 받아줬단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마운틴 쿠사 전망대
(Mt. Coot-tha Summit Lookout)

그리고 우린 마운틴 쿠사 전망대로 향했다. 차를 대고 조금만 걸어가면 됐는데, 브리즈번의 대표 관광지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오빠는 여기까지 왔으면 브리즈번 관광은 다 한 거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니, 브리즈번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높은 건물들은 조그맣게 몰려있고 그 외엔 모두 고만고만한 낮은 건물들이다 보니, 홍콩, 서울 등을 바라볼 때에 비하면 감흥이 좀 덜했다. 하지만 커다란 숲 가운데 자리 잡은 듯한 오밀조밀한 도시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관광지에 왔으니 인증숏을 찍어줘야지! 란 생각에 전망대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언니는 같이 찍으라며 조카들을 내쪽으로 밀었는데, 다행히 시아(조카1)가 내 옆에 섰고, 시율이도 엄마의 품을 떠나 내게 쏙 안겨줬다. 베이비파우더 향의 아기 냄새가 바람을 타고 코 끝을 간지럽혔고, 난 명실공히 두 조카의 고가 됐다.


시율이, 나, 그리고 시아

구경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엔 코알라 인형, 캥거루 병따개 등을 파는 기념품 숍이 있었다. 첫 가게라 아무것도 사진 않았지만, 이것저것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브리즈번, 마운틴 쿠사 등이 쓰인 후드티며, 코알라가 매달려있는 연필, 캥거루가 그려진 부메랑 모양의 마그네틱 등 다양한 물건이 있었데, 특히 말을 녹음하면 그대로 따라 해 주는 형이 참 신기했다.


웨스트필드(Westfield), 그리고 다시 집으로

시간이 조금 남아 지친 조카들과 언니 오빠를 보내고, 혼자 언니가 자주 간다는 쇼핑몰에 가보기로 했다. 부탁받은 물건이 있는지도 한 번 보고, 그냥 호주 쇼핑몰은 어떤지 구경도 할 겸. 전체적으론 한국의 것과 비슷했지만, 처음 보는 브랜드들이 많았고, 프로틴 셰이크, 단백질 바 등 건강식품만 따로 파는 가게가 있어 신기했다. 시 열심히 PT를 받고 있던 터라 슬쩍 구경하고픈 맘도 들었지만, 집에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딸기맛 셰이크가 있단 생각에 맘을 접었다.


또 독특했던 건 핑몰 한가운데에 있는 야외 푸드코드였다. 장이 뻥 뚫린 넓은 공간 중앙엔 분수가 자리하고 있었고, 그 주위로 여러 레스토랑들이 각자의 개성을 담은 간판을 걸고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분수 주변엔 비치 체어도 놓여있어, 몇몇은 거기에 누워 햇살을 만끽하기도 했다. 정말 색다른 모습이었다. 한편으론 나도 거기에 합류해 잠시 누워있고픈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은 뻘쭘한 이방인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정처 없이 길을 걷다 보니 영화관이 나왔다. 팝콘을 파는 곳도 있고, 포토 부스나 인형 뽑기 장난감도 있어 한국의 것과 꽤 비슷했다.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만 빼곤. 금요일 밤의 영화관을 생각하면 북적거리는 이미지가 연상되는데, 상영시간과 맞지 않아서였는지 사람이 너무 없는 모습에 좀 으스스하기도 했다.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드디어 해가 긴 브리즈번의 날이 저물고 있었다. 브리즈번에서의 첫날이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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