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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 Jul 21. 2019

나 같은 친구는 없을걸? 이 세상 흥이 아닌 힙지니

영화 <알라딘>을 보고

*. 잠깐! 본 콘텐츠에는 영화 <알라딘>(2019)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사진 : 네이버 영화  



윌 스미스에 홀려 개봉 전부터 보고 싶어 하다, 기생충, 토이스토리, 그리고 스파이더맨에 밀려 이제야 <알라딘>을 보게 됐다. 사실 이번에도 못 볼 뻔한 것이, <라이온 킹> 개봉해버렸기 때문이다. 심바의 그 두툼한 젤리를 보고 있노라니 어디선가 '이건 꼭 봐야 해!'라는 마음의 소리가 울렸지만, 차트 역주행을 하며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말이 실사판 심바를 보고픈 마음을 일주일 뒤로 늦췄다.


드디어 영화를 보러 가는 길. 남자 친구는 '여자 친구가 있는 애들은 다 알라딘이랑 라이언 킹 둘 다 봤다는데(근데 우린 왜 둘 다 안 봤지?), 알라딘이 더 재밌대.'라며 나를 안심시켰고, 알라딘은 과연 천만 영화였다. 사람들 말대로 처음엔 '윌 스미스가 지니라니?'란 생각이 들었고, 다음엔 '우~ 저건 좀 과한데?'(백 덤플링 전이었다)란 생각이 들었지만, 곧 푹 빠져버렸다. 지니의 흥은 이 세상 것이 아니었고, 새롭게 해석된 지니, 자스민, 알라딘, 그리고 아부까지 볼매(볼수록 매력 있는) 캐릭터천지였다.


자꾸 자리에서 발을 흔들어대던 꼬마 녀석 때문에 내 좌석도 덩달아 흔들렸지만, 시간이 갈수록 녀석의 마음 이해가 됐다. 지니의 한 음악에 맞춰 녀석의 마음도 흔들렸으리라.



자스민, 그리도 또 알라딘


개봉한 지 벌써 두 달이 다 됐으나 영화 <알라딘>에 관한 얘기는 끊이지 않는데, 그중 가장 많았던 게 바로 자스민에 관한 것이다. 왜 그런가 하니 원작 애니메이션에선 모르고 램프를 팔아먹는 등 살짝 민폐 캐릭터였던 그녀가, 왕자를 기다리는 전형적인 디즈니의 여주인공인 신데렐라, 인어공주 등과 달리 '왕자가 왜 필요해? 내가 하면 되지!'라는 역발상을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바깥세상이 궁금하단 이유로 몰래 변장을 하고 나온 공주 캐릭터는 몇 있었지만, 스스로 유일한 통치자가 되고자 한 여성은 처음이 아닌가 한다.


물론 그녀의 노래도 빼놓을 수 없다. 원래 싱어송라이터라는 나오미 스콧(자스민 역)의 노래 'Speechless'는 정말 대단했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음원차트 ('A Whole New World' 보다) 상위에 랭크된 걸 보고 한번 듣고는 그 뒤로 쭉-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음악으로, 오리지널을 뛰어넘는 명곡임이 분명해 보였다. 특히 '절대 조용히 있지 않겠다(I won't be silenced)', '내 목소리를 내겠다(I won't go speechless)'는 가사가 참 인상적이다. 마치 노래가 자스민 그 자체인 듯, 새로운 자스민의 캐릭터를 다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영화 제목을 알라딘이 아닌 자스민으로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내 생각은 다르다. 무엇보다도 알라딘은 그 유려한 담 타기와 손기술(?)로 자스민은 물론 수많은 불우이웃(특히 어린이들)을 도왔고, 또 그 특별한 능력으로 지니가 갇혀있던 램프를 손에 쥔 인물이기 때문이다. 대놓고 당차고 똑 부러지는 자스민에 비해 시종일관 겸손한 탓에 그의 진가는 이번 영화에서 그다지 빛을 발하지 못한 것 같지만, 마치 스포트라이트 바로 옆에서도 본분에 충실한 백댄서처럼 그는 영화 제목에 걸맞은 역할을 했다.


그는 이전에 지니가 만난 돈과 권력에 눈먼 다른 사람들과 같아질 뻔했으나, 끝내 이미 맛 본 돈과 권력을 내려놓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애초에 생각한 대로 수천 년 동안 갇혀있던 지니를 자유의 몸이 되도록 풀어주며, 스스로 범인과는 다른 특별한 사람이란 걸 증명한다. 게다가 자파를 램프에 가둔 건 또 어떤가! 물론 (자스민과 같이) 원작과는 다른 새로운 캐릭터를 탑재한 지니의 '다양한 해석' 덕분에 가능한 것이긴 했지만, 자파 스스로 램프에 갇히는 소원을 빌게 한 건 정말 영리했다. 이인자에 만족하지 못하고, 가장 위대한 자가 되에 병적으로 집착했던 자파의 결말은 필연적인 듯 자연스러웠다.



너무도 이국적인, 너무도 아름다운


충격적 이게도 <아라비안 나이트>에 곁다리로 번역되어 들어온 <알라딘> 원작의 배경은 중국이라고 한다. 알라딘은 중국인으로 나오고! 하지만 이는 아랍이든 중국이든 똑같이 그저 먼 이국으로 생각했던 원저자에 의해 행해진 실수였던 것 같다. 역시 원작에 함께 등장하는 무어인은 아랍계 이슬람교도 중 하나니까. 그래서 중국과 아랍이 짬뽕된 형태였던 것이, 디즈니에서 각색을 하며 일단 아랍으로 몰고 가 지금의 형태가 된 것이다. 참 다행이다.


술탄이란 단어만 봐도 그렇다. 대통령도 아니고, 왕도 아니고... 술탄이라니! 그들만의 정체성이 확 드러나는 단어다. 금방이라도 낙타의 등을 닮은 사막의 언덕에서 모래가 바람을 타고 와 사방을 둘러쌀 것 같고, 머리에 각양각색의 모자를 쓴 사람들이 그 큰 눈으로 나를 신기하게 바라볼 것만 같다.

술탄 : 어원은 '통치자', '권위'. 본래 이슬람의 코란에서는 종교적인 의미에서 '도덕적 책임과 종교적 권위를 수행하는 통치자의 역할'을 의미하는 비인격적인 용어로 사용되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칼리프제 하에서 칼리프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특정한 지역을 지배하는 무슬림 통치자를 지칭하는 칭호로 사용되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중간에 알라딘이 마을을 휘저으며 도망치는 장면에서 흐르던 특유의 음악도 좋았다. 왠지 모르게 그 자체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마꾸 흩뿌리는 듯한 그들의 음악은, 마치 영국 드라마 <셜록>의 배경음악처럼 앞으로 위험한 -하지만 흥미로운- 모험이 펼쳐질 거란 기대를 갖게 한다.

 


흔치 않은 자주색 드레스에 화려한 옥색 장신구를 걸친 자스민 공주의 자태는 물론이고(정말, 너무 잘 어울렸다!), 알리 왕자의 화려한 아이보리색 의상도 어깨뽕이 들어간 조끼와 금빛 테두리 디테일 등이 멋스러웠다. 내가 그들의 전통복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것처럼, 그들 또한 우리의 한복을 그렇게 바라보는 게 아닐까. 전통은 그 자체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지만, 획일화된 서양식 문화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그 가치를 더하는 것 같다.


역사에서 아랍 문화권 내에 여자 술탄, 일명 술타나가 딱 두 명 있었다고 한다. 둘 다 1200년대로 지금으로부터 800년도 더 된 일이다. 875년에 시작해 천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고작 두 명이라니! 게다가 악명 놓은 아랍 문화권에서의 여성들의 제한된 권리를 따져보면, 실제는 영화에서만큼 멋지고 근사하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터키나 이집트는 괜찮지 않을까? 언젠가 가게 된다면 친숙한 동아시아나 영미권의 문화와는 다른 그들의 일상 하나하나가 너무 흥미로워, 길에서 한 발 한 발을 걷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천년을 기다려온 힙이라는 게 터졌다


매번 영화를 보며 느끼는 거지만(<스파이더맨:파 프롬 홈>은 예외), 노래가 주는 힘은 정말 대단하다. 영화를 보러 가는 길엔 '그러게, 내가 알라딘(애니메이션)을 봤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했는데, 알라딘이 마법 양탄자에 자스민을 태우고 'I can show you the world~'라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 이거 내가 좋아했던 노래잖아. 덕분에 시간여행을 해 마법 양탄자를 '정말로' 갖고 싶어 했던 어린 시절의 나를 잠깐 만나볼 수 있었다.


영화에서의 가무를 논하고자 한다면 지니를 빼놓을 수 없겠다. 그의 말처럼 몸에 비해 너무 작은 램프에서 천년 동안 구겨져있던 탓인지, 스트레칭을 시작한 그는  화려한 춤과 노래를 선사한다. 처음엔 너무 오버스러워서 좀 오글거리기도 했지만, 후엔 이미 거기에 적응을 한 건지, 아님 지니가 알아서 수위조절을 했는지 자연스레 그 흥에 휩쓸렸다. 마법을 부릴 수 있기에 가능했던 그 모든 화려한 효과와 변신술은, 랩인 듯 노래인 듯 쉴 새 없이 나오던 음악과 함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여러 댄서들이 춤을 추며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그 뒤에 커다란 코끼리(실은 원숭이지만)와 함께 알리 왕자가 등장하는 신도 좋았다. 특히 행렬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항공 샷은, CG로 만들었을 걸 알고 보는데도 그 웅장한 스케일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서 한 번쯤은 나와주길 기대하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액션 영화처럼 쾅-하고 폭발하는 건 가끔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만, 발리우드를 연상시키는 군무와 흥겨운 음악, 그리고 폭탄 대신 터지는 꽃잎들은 가히 영화의 클라이맥스라 부를 수 있는 명장면을 만들었다.


결국 알라딘은 자스민 공주와 결혼해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라는 결말을 보고 영화가 벌써 끝나버렸단 사실에 쉬이 자리를 못 뜨고 있는데, 곧 알라딘과 자스민의 결혼식 연회장이 보이고 다시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끝까지 두드러진 존재감을 드러내는 지니는 여전히 흥이 넘치는 랩을 선사하고 뒤로 빠지는데, 그 자리에 자스민이 등장한다. 입을 가리며 비트박스인지 랩인지 모를 퍼포먼스를 선보인 후, 댄서들과 안무에 맞춰 춤을 추는 그녀의 모습은 아쉬운 마음을 달래줬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스민의 춤을 따라 추며 계단을 내려갔다. 





아, 감초 같았던 아부와 양탄자의 우정빼놓을 수 없겠다. 둘은 힘을 합쳐 알라딘과 자스민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그들을 멋지게 구해낸다. 원작에선 반지의 정령이 해냈던 일을 그들은 빠른 손발과 나는 능력을 이용해 거뜬히 해낸다. 특히 아부의 재치와 귀여움은 보는 내내 흐뭇한 미소를 짓게 했다. 램프를 찾으러 들어간 동굴에서 코발트블루 빛깔의 보석에 눈이 먼 알라딘의 뺨을 챱-하고 때렸던 아부, 그리고 지니가 묻는 껄끄러운 질문에 건치를 드러내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던 아부는 정말 사랑스러웠다.


아직 영화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OST를 틀어놓고 글을 쓰고 있자니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아빠 다리 사이에 들어가 잠들었던 와니 움찔거리기 시작한다. 이만 줄여야겠다. 다음엔 터키를 가볼까, 이집트를 가볼까. 일단 <아라비안 나이트>를 먼저 봐야겠다.


You ain't never Had a Friend Like me Never ever ever n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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