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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 Jun 25. 2020

미쳐버린 워킹맘 이야기

미드 <워킹맘 다이어리>를 보고

뭐, 재밌는 거 없나? 정처 없이 인터넷을 떠돌다 미드 <워킹맘 다이어리>가 재밌단 글을 봤다. 핫했던 <기묘한 이야기>의 뒷얘기를 담은 <기묘한 이야기의 궁금한 이야기>와 미뤄둔 <블랙 미러>의 나머지 에피소드까지 남김없이 본 후, 다음 드라마를 찾지 못했던 차에 들린 희소식이었다. 물론 그전에 다른 드라마를 추천하는 글도 많이 봤지만

한 번 봐볼까?

란 생각이 든 건 처음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출근길 사람들 틈에 끼여(왼손도 같이 껴있었다.), 오른손으로 겨우 핸드폰을 들고 넷플릭스를 켰다. 어렵게 손가락을 놀려 드디어 삼각형을 눌렀다. 재생. 하지만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를 봤을 때보다도 더 빠르게 핸드폰의 홈 버튼을 눌러야 했다.

태어나 본 것 중 가장 파격적인 첫 장면이었다.



강력한 한 방,
첫인상은 3초 안에 결정된다.


시즌1의 첫 장면 세 명의 여주인공 번갈아 잡는 클로즈업 화면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밑을 봤다 옆을 봤다-하며, '그래도 나름 괜찮은 것 같다'거나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강아지 같다'는 둥 영문모를 말을 주고받는다. 그러다 뭐지? 하는 순간, 카메라가 뒤로 물러나며 풀샷을 잡는다. 세 쌍의 젖가슴과 여섯 개의 검은 꼭지가 날 쳐다보고 있다. 모유수유를 하느라 쳐질 데로 처져버린 가슴 이야기였다. 


첫인상은  3초 안에 결정된다는 말처럼 <워킹맘 다이어리>의 첫 장면은 그렇게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고, 그에 못지않은 내용은 나를 끝까지 붙들었다. 누가 출산 후 처음으로 볼일을 볼 때의 아픔을 이토록 적나라하게 말해주겠는가. 출산 직후엔 극심한 변비에 걸리게 돼 꽉 막힌 그곳을 긁어내기도 한다는 말을.


https://www.primetimer.com/barnhart/workin-moms

결코 길지 않은 출산휴가를 끝내고 회사로 돌아와, 화장실 한편에서 모유 유축기를 가슴에 단 채 업무 전화를 받는 장면은 또 어떻고. 결국 며칠 만에 3개의 시즌을 단숨에 정주행 하고, 얼마 전 드디어 시즌 4가 나왔단 걸 알고 기뻐하며 다시 티브이를 켰다.



이상한 엄마, 이상한 엄마, 이상한 엄마,

그리고 정말 이상한 엄마


드라마엔 총 네 명의 워킹맘이 나온다. 컨설턴트 이티, 정신과 의사 앤, 부동산 중개업자 프랭키, 그리고 회사원 제니. 각자의 자리에서 누구보다 일을 즐기고(제니는 제외) 또 잘하지만, 그저 워킹(working)만 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아내이자 맘(mom)이란 사실이 그들을 미치게 다.


스무 살이나 어린 남자와 섹스를 하지만, 그게 왜요? 남편은 내 절친의 보모와 바람을 피웠다고요! 가끔 차사고라도 나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왜요? 애인은 아이가 생긴 후 나를 돈 벌어오는 기계 취급한다고요!


억울한 상황은 계속된다. 케이트의 남편은 바람을 피운 이유로 그녀가 출장을 가느라 자리를 비운 걸 들먹이고, 그녀가 평생 바라던 꿈을 좇은 일을 비난한다. 반대로 케이트가 남고, 그녀의 남편이 떠난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프랭키의 애인은 산후우울증을 겪는 그녀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더니, 결국 다른 사람을 만나 그녀를 떠나버린다.



그리고
드라마보다 더 재밌는 뒷 이야기


다행히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하기만 한 건 아니다. 안타깝고 열 받는 일이 끝없이 일어나지만, 결국 이기는 건 그들이기 때문이다. 예스! 케이트는 한참 후배가 단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실력으로 그 우위를 입증한다. 제니는 남녀 간 임금격차가 존재한다는 걸 알고, 대충 입막음하려는 남자 임원에게서 임금 상승과 사내 어린이집을 모두 쟁취한다.


동그란 안경을 쓴 앤(Anne Carlson)

다만, 하루 만에 다 봐버린 시즌4의 결말이 조금 아쉬웠다. 최애 캐릭터인 앤이 이사를 가는 걸로 끝이 나기 때문이다. 그동안 앤의 지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스타일도, 화끈하면서 쿨한 성격도, 심지어 다정한 그의 남편까지도 다 너무 좋아했는데, 이제 더 이상 앤을 보지 못하는 건가. <섹스 앤 더 시티>처럼 서로 다른 곳에 있어도 가끔 얼굴을 비추면 좋겠다.


드라마보다 더 재밌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있다. 드라마의 제작자가 바로 케이트 역의 캐서린 레이트만이란 사실이다. 알고 보니 그녀는 캐나다의 유명 코미디언이라고. 게다가 드라마에서 남편인 네이선 역으로 나오는 필립 스텐버그와 실제 부부라고 한다. 필립 또한 드라마에 책임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있고. 여기까지 오니 찰리도 실제 아들은 아닐까 궁금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얼마 전 결혼을 앞둔 직장동료와 차를 마셨다. 결혼 준비는 잘 되냐며 물꼬를 튼 이야기는 곧 임신과 그 후로 흘러갔다. 남자 친구는 자기가 키우겠다며 아이를 낳자고 하지만, 그게 어디 간단한 일인가? 동료는 임신과 육아에 관한 책과 동영상, 심지어는 웹툰까지 들먹이며 먼저 준비를 해보자고 했지만, 애를 직접 키우겠단 사람은 책을 펴거나 동영상만 틀면 이내 피곤하다며 주의를 돌리거나 자버린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곤 바로 이 드라마를 추천했다.

적어도 이 드라마를 보며 잘 일은 없을 테니까.





*.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 블랙 미러 시즌 5의 에피소드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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