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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 Apr 13. 2020

근위 먹다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 이유

열에 하나의 경우 때문에...

남자들에겐 동굴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다투고 난 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여자가 먼저 연락에 안절부절못하게 만든다는. 하지만 그는 예외다. 우리가 화해하는 건 열에 아홉은 그가 먼저 손을 내밀어줘서다.

2년 넘게 만나며 많이도 다퉜다. 지나고 나니 왜 싸웠는지 기억이 안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때만큼은 안녕이란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진지하게 싸운다.

그리고 결국 화해한다.



열에 아홉


역시 뭘로 싸웠는진 기억나지 않지만, 한 번은 근위, 일명 닭똥집 튀김을 먹다 싸운 적이 있다. 같은 가게에서 치킨을 먹다 싸운 적이 있어, 우스갯소리로 한 번만 더 싸우면 여긴 다신 안 와야겠다-했는데... 정말 또 싸워버렸다. 덕분에 닭똥집을 먹다 추가로 시킨 김말이 튀김은 맛도 못 봤다. 가게를 나와서도 좁혀지지 않는 의견차에 결국 고개를 숙였다. 사람이 많은 대로를 피해 골목으로 들어가 눈물을 훔쳤다.


지나치다 보면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난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했던 모습이었다. 연인과 길에서 말다툼을 하다 결국 울어버리고 마는 여인의 모습. 그게 바로 나였다. 닭똥집 앞에서 흘리는 닭똥 같은 눈물에도 항복하지 않는 그가 야속했다. 말없이 발길을 돌리고 집으로 걸었고, 그는 한 걸음 뒤에서 따라왔다.


단 둘만 있던 엘리베이터에서까지 침묵하던 그는 결국 집 문 앞에 서서야 입을 열었다.

들어가서 조금만 더 얘기하면 안 돼..?

그렇게 우린 다시 화해했다. 생각보다 좀 늦긴 했지만 그는 결국 언제나처럼 내게 먼저 손을 내밀었고, 문제의 그 치킨집은 다신 안 간다.



열에 하나


엊저녁엔 이제 남편이 된 그와 나란히 침대에 누워있었다. 며칠 째 잘 준비를 끝내고 침대에 앉아서도 끝없이 트림을 해대던 나를 본 그가 입을 열었다. '애기야, 병원 한번 가볼래?' 그리곤 인터넷으로 찾아본 내용들을 열거하며, 역류성 식도염 때문일 수 있다고 당분간 커피도 마시지 말라고 덧붙였다.


걱정이 돼서 한 말이라고는 하지만, 옛날부터 그의 이런 '쉬운 걱정'이 싫었다.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집 안 어딘가에 있을 약을 찾아봐주는 게 아니라 병원 얘기부터 꺼내는. 눈이 아프다고 하면 혹시 눈에 뭐가 들어갔나 봐주는 게 아니라 티비를 그만 보라고 말하는.


아프면 병원에 가면 되고, 일하기 싫으면 그만두면 되고, 안될 것 같으면 포기하면 된다. 누가 그걸 모를까? 다만 함께 고민해 진짜 문제가 뭔지 찾길 원하는 건데...  


그런 연유로 어제도 그의 말이 고맙기보다 화가 났다. 잔뜩 눈을 흘기며 '싫어! 커피 마실 거야!'라고 볼멘소리를 했고, 이내 그는 익숙한 듯 '그래, 애기 하고 싶은 거 다해~' 라며 체념했다. 이번엔 열에 아홉이 아니었을까.


나는 먼저 속내를 드러내고 마음에 있던 말을 꺼냈다. 얼마 전 정기검진 차 갔던 병원에서 들은 좋지 않은 결과 때문인지 소화가 잘 안 되는 것 같다는. 의사는 낮아야 할 수치가 높게 나왔다며 치료를 다시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고, 그날 이후 열에 하나 정도일 그 가능성이 내 안엔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걸로 걱정하고 있었어?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의외의 반응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그의 모습이, 같이 병원에서 결과를 들은 후에도 너무 태연했던 당시의 모습과 오버랩되었다. 그는 정말 별일 아닐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혼자 괜한 걱정을 했단 생각에 마음이 놓였고, 항상 곁을 지켜주는 그의 존재가 더욱 든든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우린 또 한 번 화해했다.





*. 표지 사진 : https://unsplash.com/@tio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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