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 튀김은 들어봤어도, 상추 튀김은 처음 들어본다면...
지난 5월.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는구나. 날씨가 화창한 어느 봄날, 나는 '오월의 신부'가 되었다. 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인 덕인지, 입술에 (본식날까지 없어지지 않은) 물집이 잡히도록 신경을 쓴 덕인지 결혼식은 무사히 마무리가 되었다. 다만 전 세계에 만연한 바이러스로, 첫 유럽여행이 되었을 신혼여행은 포기해야만 했다.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수백 개의 비즈가 달린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한 발짝도 떼기 힘들었던 게, 보는 이마다 예쁘다 해주니 내가 정말 예쁘구나- 하고 공주병에 걸렸던 게 모두 꿈처럼 아득해졌다.
하지만 허니문을 못 갔다고 양가 부모님께 드리는 인사도 패스할 순 없었다. 일주일 뒤, 홍삼을 들고 차를 운전해 시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닭갈비에 볶음밥까지 든든히 먹고 들어와, 먼지 쌓인 앨범 속 남편의 옛날 사진을 보며 낄낄거렸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그의 졸업 사진은 하나같이 낯설면서도 묘하게 그대로인 구석이 있어 단체 사진 속에서도 곧잘 그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이제 친가에 갈 일만 남았다. 시댁에 들리는 게 내게 결혼식이라는 큰 집안 행사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관문이었다면, 그에겐 친가에 가는 일이 그에 상응하는 일이었을게다. 공평하게 홍삼을 들고 길을 나섰지만 이번엔 기차를 탔다. 경기도에 있어 차로 40분 거리인 시댁과 달리, 친가는 전라도 광주라 운전해서 가려면 꼬박 4시간이 걸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거리 때문에 자주 찾아뵙지 못하다 보니, 내친김에 일박도 하기로 했다.
동생이 미리 예약해둔 단골집으로 가 엄마, 아빠, 동생, 나, 그리고 남편까지 다섯 명이서 맥주 세병에 소주 네 병을 비워가며 거나한 저녁을 함께했다. 사위를 맞아 기분이 몹시 좋았던지, 아빠는 혼자 소주 두 병을 다 마셔 잔뜩 취한 그를 데리고 차까지 대접한 후에야 우리를 놓아주었다.
다음날 아침. 느긋하게 일어나 아침을 먹으러 간 곳은 다름 아닌 기차역 근처 시장이었다.
상추튀김을 먹기 위해서였다.
연애시절에도 몇 번 나를 따라 광주에 온 적이 있지만 매번 시간이 없어 상추튀김을 먹어보지 못한 그를 위해, 호텔 조식을 신청하지 않고 외식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경기도 사람인 그는 나를 따라 광주에 온 첫날 '상추튀김'이란 것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 후로 줄곧 말로만 듣던 상추튀김을 맛보고 싶어 했다. 깻잎튀김도 아니고 상추튀김이라니! 이름만으로도 신선한 충격이고, 곧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심지어 줄곧 광주에서 살다 대학생 때 상경한 내 고교 동창도 상추튀김의 존재를 고등학생 때에야 알았을 정도니... 그가 놀란 건 별일도 아니다.
아, 상추튀김이 상추를 튀긴 거냐고? 아니다.
상추튀김은 쌈이다.
상추에 고기 대신 튀김을 싸 먹는 거라 상추튀김이란 이름이 붙었다. 1970년대 후반, 광주의 옛 시가지인 충장로의 한 튀김집에서 점심을 먹던 이가 밥이 부족해 상추에 튀김을 싸 먹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때 그가 싸 먹은 것도 오징어 튀김이었을까? 튀겨지는 건 상추가 아니라 오징어가 보통이다.
지금은 전라도 몇몇 지역에도 파는 곳이 있다지만, 원조는 광주라는 게 특이하다. 초등학생 때부터 따라다니던 질문 중 하나인 '광주의 특산물은 무엇인가?'에 답 할 거리가 하나 더 있는 것이다. 무등산 수박도 좋지만, 그 뒤엔 상추 튀김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
시장 중간쯤에 다다르자, 간판도 없이 문에 큼지막하게 '상추튀김'이라고 스티커를 잘라 붙인 허름한 가게가 보였다. 어쩐지 맛집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근처의 유일한 상추 튀김집인 걸 알기에 주저하지 않고 발을 디뎠다. 평생 함께하기로 한 그에게 내 고향의 맛을 보여줄 때가 된 것이다.
사위가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는지 걱정이 된 아빠의 전화에 사실대로 말했더니, 아침부터 웬 튀김이냐는 잔소리를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음식이 나오자 남편은 미리 먹는 법을 찾아본 듯 거침없이 손을 놀렸다. 켜켜이 쌓인 상추 중 하나를 집어 물기를 살짝 턴 후, 소복이 쌓인 튀김 중 가장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것을 집어 그 위에 올렸다. 그리고 간장 종지에서 잘게 썬 양파와 고추를 몇 개 꺼내 얹은 후 야무지게 싸서 입으로 넣었다.
씹느라 바쁜 얼굴로 그가 터미네이터처럼 엄지를 든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안도감과 함께 슬며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순간 그가 입에 넣은 것은 단순한 상추와 오징어 튀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상추 튀김'이라는 하나의 음식이었고,
내 고향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마주 보며 상추 튀김을 나눈 것은 앞으로 서로의 지난 배경을, 자라온 환경을 모두 받아들이고 포용할 것을 표명하는 암묵적인 의식이었다.
그 날로 상추 튀김은 내 어린 시절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역사이자, 우리가 함께할 날을 장식할 미래가 되었다.
*. 상추튀김의 유래는 두산백과에서 참고하였습니다.
*. 무등산 수박은 광주 북구에서 재배하는 수박의 일종으로, 줄무늬가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