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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 Jul 21. 2020

오늘의 할 일 : '애기야' 20번 이상 외치기

박신양도, 서인국도 아닙니다만...


얼마 전 라섹 수술을 했다. 사흘 정도 눈이 시릴 거라고 했는데, 그냥 시린 정도가 아니었다. 지옥이었다. 다행히 날짜는 딱 맞았다. 나흘째인 바로 어제 거짓말처럼 고통이 사라진 것이다. 덕분에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 <놀면 뭐하니>를 시청하며, 남편과 오랜만의 느긋한 휴식을 즐겼다.


효리 언니는 어쩜 그렇게 변함없이 아름답고 매력적인지, 감탄을 연발하며 순식간에 여섯 편을 정주행 했다. 린다 G와 제주댁을 오가는 모습에 <효리네 민박>에서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녀는 하도 남편을 불러대는 바람에 '오빠 금지령'을 받았었다.  


출처 : 중부일보(http://www.joongboo.com/news/articleView.html?mod=news&act=articleView&idxno=1175532)


당시엔 그녀가 왜 그렇게 '오빠'를 찾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모든 남자를 10분 안에 꼬실 수 있다며 한없이 당당하던 그녀가, 이제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건가? 싶기도 했다.



연애 시절엔 주말에도 하루는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며, 토요일에 데이트를 하면 그 주 일요일엔 얼굴만 잠깐 보거나 아예 만나질 않았다. 일주일에 몇 시간이면 충분하지 않냐며 결혼한 지금 주말부부를 꿈꾸는 친구 Y만큼은 아니지만, 책을 읽든, 멍을 때리든,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은 필수였다.


결혼 초엔 매일 얼굴을 보니 주말엔 밥을 먹거나 둘 다 좋아하는 영화를 볼 때를 제외하곤 그는 서재에서, 나는 거실에서 각자 할 일을 했다. 이미 영화 한 편을 끝낸 후 몇 분째 넷플릭스의 카테고리를 훑게 되면, '나 글 써야 되니까 따로 뭐 좀 하고 있을래?', '오늘은 낮잠 안자?' 등의 말을 꺼내며 그를 서재나 침실로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같이 거실에 엉켜있다 남편이 게임을 하겠다고 일어나면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다. 그래서 별 거 아닌데도 '와~ 애기야, 이거 봐봐!' 하며 그를 다시 거실로 불러들이거나, 재미없는 프로를 보면서도 그에게 들릴만큼 크게 웃어 보인다.



처음엔 일상에 깊이 베인 이러한 징후를 알아채지 못했다. 다만 혼인 신고가 우리 사이에 찬물을 끼얹은 건 아니었구나-하고 안심했다. 그러다 코로나 19 확산으로 재택근무를 하며 깨닫게 되었다. 남편과 같이 살게 된 후 가장 자주 하게 된 말이 바로 '애기야'라는 걸. (참고 : 애밍아웃, 우리 커플의 애칭을 공개합니다)


둘 다 재택근무를 하며 평일이든 주말이든 가릴 것 없이 함께 있게 되자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를 부르게 되었다. 나란히 앉아 일을 하다가도 문득, 다른 방에 있으면 궁금해서, 때로는 그냥 불러보고 싶어 '애기야'를 연발했다. '오빠'가 '애기'가 되었을 뿐. 나도 그녀와 다를 바 없이, 매 순간 반쪽을 부르짖는 종달새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다 몇 주 뒤 혼자 재택근무를 하게 되자 하루는 그가 퇴근하고 집에 오기 전과 후로 나뉘었고, 그의 칼퇴를 기원하는 게 일과가 되었다. 이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지 못하게 된 걸까? 그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진 건 아닐까?




대답은 '아니오'다. 지금도 홀로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고,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하니까. 다만 남편에 대한 믿음이 깊어졌고, 하나가 아닌 둘로 보내는 시간의 즐거움이 커졌다는 건 인정해야겠다. 이 글을 읽은 후 그가 보일 반응이 궁금해 얼른 발행하고 싶으니까.



애기야~ 이번 글은 어때?







*. 매거진 <30대 부부의 결혼 이야기>(구, Love heals all)에 몰아 연재하던 것을 부동산과 인테리어 이야기는 매거진 <언덕 위의 하얀 아파트>에, 저희 부부의 오글오글한 일상 이야기는 매거진 <만질 수 있는 사랑의 순간들>에 발행하는 것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참고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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