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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 Jul 13. 2019

애밍아웃, 우리 커플의 애칭을 공개합니다

박신양, 김정은 그리고...

*. 잠깐! 본 콘텐츠에는 다소 오글오글한 내용이 포함되어있습니다.



만나기  사진으로  그의 얼굴은 뭔가 사자 같았다. 백수의 왕인 사자. 어흥. 제일 먼저 들어오는 살짝  얼굴형에  있는  없는  연한 쌍꺼풀  아래 놓인 반짝이는 , 그리고 크고 도톰한 코가 사자를 연상시켰다.


맘에 쏙 들었다.


왠지는 모르겠다. 예전부터 고양이상도, 강아지상도 아닌 사자상의 남자가 좋았다. 으로 넓기보단 위아래로 긴 얼굴이 좋았고, 얇고 뾰족한 코보단 크고 살짝 뭉툭한 코가 좋았고, 선명한 쌍꺼풀이 있는 눈보단, 쌍꺼풀 없이 작지도 크지도 않은 눈이 좋았다. 연예인으로 치자면 꺼풀 수술 전의 금성무? 물론 금성무는 그냥 사자상이 아니라, 아~주 잘생긴 사자상이긴 하지만.



그는 - 물론 아주 잘생지만 - 잘생긴 사자보단 아기 사자 가깝다. 살짝 처진 눈에 코끝이 동그래서 귀여운 느낌이 있다. (그가 연하라 귀여워 보이는 건 절대 아니다!) 그를 처음 본 아빠도 후에 '참 수더분해 보이더라'며 둥글둥글한 그의 인상을 공유했다.


그렇게 처음엔 그의 얼굴을 보고 '아기 사자'같다고 하다가, 아기 사자는 뭔가 발음하기가 어려워 '애기 사자'로 부르게 됐고, 그걸 줄이다 보니 결국 그의 애칭은... '애기'가 됐다. 맞다, 그 애기. 려 15년 전에 나온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박신양이 그렇게 불렀던 애기. 나도 가끔 드라마의 명대사를 던지며 그의 손을 잡는다.


"애기야, 가자~"




그런데 문제는 내 애칭도 '애기'라는 것이다. 어쩌다 그렇게 된 건진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언젠가부터 그는 나를 귀엽다며(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애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린 서로를 똑같이 '애기'라고 부르게 됐고, 그러다 보니 가끔 웃긴 일이 벌어진다.


저녁 메뉴를 고를 때 "애기, 뭐 먹고 싶어요?", "난 딱히... 애기가 먹고 싶은 거 먹자~"라며 같은 단어로 서로를 칭하고,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그를 보며 "오구, 애기같애~"라고 하면 "애기? 아, 애기~"라며 그가 나를 가리키곤 한다.


같이 사는 고양이들도 '애기들' 또는 '우리 애들'이라 불러 가끔 주변인을 혼란스럽게 하기도 한다. 언젠가 "애들이 집에 있어서~"라는 말에 직장 동료가 "애들? 집에 애가 있어요?"라고 놀라기도 했다. 내가 본가에 가느라 자리를 비울 때면 그가 '애기(= 나)네 가서 애기들(= 고양이들) 밥 주고 올게~'라고 카톡을 보내는데, 그럴 때면 나, 그, 그리고 고양이 둘까지 넷이 모두 애기가 되어버리는 일도 있다.  


지난 미국 여행에서 캐년 투어를 할 땐 가이드 아저씨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투어용 승합차에서 운전석 바로 뒤에 앉아있던 우리는 여느 때처럼 이런저런 얘길 하고 있었고, 자연스레 서로를 부르는 '애기'라는 단어가 자주 나왔다. 그러자 앞에서 운전을 하던 가이드 아저씨가 능청스레 말했다.


"애기? 여기 애는 없는데~?"





사실 처음에 그는 반대 의사를 강력히 표했었다. "내가 무슨 애기야, 나 같은 남좌~가!"라며. 하지만 그런 모습도 내 눈엔 여전히 딱 애기 사자였기에 그를 꾸준히 애기로 불렀다. 그렇게 1년이 지났고 그는 낯설던 애칭에 완벽하게 적응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내가 그의 포근한 품에 안겨 "아빠 같아~"라고 하면 그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빠라니, 오빠지 오빠!"라며 오빠라고 불러달라고 하기 시작했다. "오빠가 아닌데 어떻게 오빠라고 해?"라고 물으면 "무슨 소리야 사실 나 8X이야~" 라며 뻔한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엽다. 오빠라 불러달라고 조르는 모습이 너무 기 같아 더욱 그를 오빠라 부를 수 없다. '오빠' 소리를 듣는 게 남자들의 로망인 건 알지만 어쩔 수 없다. 그가 내게 귀여운 남자로 남아있는 한 오빠로 리는 날은 쉬이 오지 않을 것이다.





*. 표지 사진 : https://unsplash.com/@derstu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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