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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 Apr 29. 2019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증거

마음씀이 느껴지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배려들

여느 무료한 오후, 카카오톡에서 샵(#)을 눌러 엄지를 바삐 올렸다 내렸다 하다 보면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하는 10가지 행동>, <오래가는 연인들의 5가지 법칙> 같은 제목의 글이 심심찮게 보인다.


호기심에 일단 클릭을 하곤 심리 테스트를 하듯 그 글에 나와 그의 모습을 비추며 맘 속으로 동그라미와 가위를 그려본다. 결과는? 열에 일곱 개는 동그라미지만, 한 두 개는 세모, 한 개 정도는 가위가 그려진다.


재미로 하는 거라 동그라미가 아닌 게 있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무엇보다 수많은 연인의 관계를 몇 개의 문장으로 규정할 순 없는 거니까. 우리도 마찬가지다. 너무 소해 누군가에겐 무심히 스쳐 지날 일일 수도 있지만, 내겐 실하게 사랑을 느끼게 하는 그만의 려가 진짜 사랑의 증표다. 


이름하야

소.

확.

배.



언제나 폭신한 패딩 주머니


지난겨울의 일이다. 지금은 기억도 안 나는 (사소했을) 이유로 인해 나는 살짝 삐져있었다. 퇴근 후 만난 그는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느 때와 같이 차가워진 내 손을 잡아 그의 패딩 주머니에 넣었는데, 걷다 보니 이미 주머니에 있던 딱딱한 핸드폰이 자꾸 손에 부딪혔다. 순간 신경질이 나서 "손이 아프잖아!"라고 소리쳤고 그는 미안하다며 얼른 핸드폰을 꺼내 반대편 주머니에 넣었다.


핸드폰이 없어진 패딩 주머니와 여전히 내 손을 잡고 있던 그의 손이 너무 폭신하고 따뜻해, 별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낸 게 무안했다. 그 후로 지금까지 그는 내 손을 잡아 주머니에 넣을 때마다 먼저 핸드폰이 들어있는지 확인을 한다. 

 


불편한 삶의 낙


둘 다 일이 많아 야근을 하던 날이었다. 저녁 10시경, 어느 정도 일을 마무리한 나는 그에게 먼저 집에 들어간다는 문자를 보내 놓고 자리를 정리했다. 사무실을 나와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5분 만에 정리하고 가겠단 답장이 왔다. 일도 많이 남았을 텐데, 늦게 들어가는 나를 바래다주려고 바로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것이다.


택시를 타고 온 그는 역에서 내려 나를 바래다주고 집으로 걸어갔다. 남은 일을 다 마친 후 편한 마음으택시를 타고 곧장 집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날 위해 불편한 결정을 한 것이다. 그러면서 매일 나를 집에 바래다주는 게 삶의 낙이라고 하는 걸 보면 (진심인지 살짝 의스럽기도 하지만) 기분이 다. 



차가운 것도 괜찮아


작년 12월에 오사카로 떠난 우리는 일정 중 하루를 다 비워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갔다. 가장 기대했던 곳은 바로 해리포터 존이었고, 마법의 트리 밑에서 사진을 찍고 기념품 가게에서 온갖 지팡이를 휘두르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역시 해리포터를 테마로 한 레스토랑에서 버터 맥주 컵 증정 세트를 시켜먹는데, 치킨은 그럭저럭 먹을만했지만 맥주는 생각보다 너무 달고 맛이 없었다. 원래부터 컵이 목적이었던 터라 내용물은 버리고 대충 비닐봉지에 싸서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가 컵을 들고 화장실로 가 깨끗하게 씻어 가지고 나왔다. 한국보다 따뜻하단 말에 초겨울 차림으로 가 벌벌 떨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손에 차가운 물을 묻히길 주저하지 않았다. 



우리 이쁜이


몇 달 전 그의 절친한 직장 선배의 결혼식이 있었다. 선배는 그에게 사회를 맡아달라고 부탁했고 난 그가 진행을 하는 모습이 보고 싶어 따라나섰다. 사회자로 가는 것이라 미리 이것저것 맞춰보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예식장에 도착한 우리는 결혼하는 선배를 필두로 뒤이어 도착한 여러 직장 동료들을 차례로 만났고 난 그의 소개에 맞춰 인사를 하기에 바빴다.


이후 그는 언제 긴장했냐는 듯 사회를 무사히 마쳤고, 우리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 후, 남자 친구는 나를 본 직장동료들이 했다는 칭찬의 말을 전해왔다. '예쁘다', '단발머리가 잘 어울린다'는 말도 좋았지만 '역시 우리 이쁜이~'라며 나보다 더 좋아하는 그를 보는 게 가장 좋았다.



같은 길을 걸어도


3월 한 달은 그에게 너무도 가혹한 시간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야근을 하고 주말도 반납해가며 일하는 통에 그의 얼굴은 나날이 창백해져 갔다. 휴식이 필요했다. 다행히 4월이 되자 주말 출근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됐고, 우리는 예정대로 오래전에 예약해둔 호텔로 향했다.


늦게 찾아온 봄은 더 따스한 햇살을 내려줬고 우리는 오랜만의 데이트와 곧 다가올 호캉스에 마냥 들떠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호텔 근처에 다 와서야 매일 아침저녁으로 먹어야 하는 약을 안 갖고 온 걸 깨달았다.


하루쯤은 안 먹어도 된다는 내 말에도 그는 "그래도 챙겨 먹는 게 더 좋잖아"라며 얼른 가져올 테니 카페에서 쉬고 있으라고 했다. 결국 우리는 같이 집에 갔다 오기로 했다. 같은 장소를 세 번이나 지나쳐야 했지만 왕복 1시간이 넘는 거리를 자처한 그의 손을 잡고 걸으니 그 또한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가끔은 '그가 날 사랑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같은 사람을 보며 어떨 땐 '나를 정말 사랑하는구나'라고 생각하지만, 또 어떨 땐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해 스스로 행과 불행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연인들이 만드는 다양한 사랑의 형태는 결국 두 사람의 각기 다른 마음이 합쳐진 결과인데, 그의 마음이 나의 것과는 조금 다른 모양을 하고 있어 때때로 그의 사랑을 곡해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오늘도 소소하지만 확실한 그의 배려를 모은다. 사랑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니까. 


 




* 표지 사진 : Photo by Renee Fish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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