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 멤버십 혜택으로 한 달에 한 번은 영화관에 가는데 이번 달엔 아직 가질 못했다. 그 사이 새로 나온 영화가 많아 뭘 보러 갈까-고민하고 있던 차에 그가 카톡을 보냈다. "<사자>는 보면 안 된대, 위험한 영화래."
마침 점심시간에 회사 동료들과 밥을 먹다 영화 얘기가 나왔는데 다들 <사자>는 망한 것 같다고 했던 터라 "아~ 맞아, 노잼이래. 보지 말자!"라고 답장을 보냈다. 하지만 그가 위험한 영화라고 한 건 재미가 없단 뜻이 아니었다. "아니, 박서준이 너무 엄청나서. 남자들이 다 오징어가 된대."
순간 '영화를 보다 옆을 보니 웬 오징어가 팝콘을 먹고 있더라'는 말을 유행시킨 강동원이 생각났다. 그래, <늑대의 유혹>에서 우산을 들추며 웃던 그의 얼굴은 이 세상 것이 아니었지. 옆에 앉은 남자는 물론 여 주인공도 위협할 정도의 아름다움이었으니.
하지만 나는 단번에 그의 걱정을 잠재웠다. "아니야, 애기는 오징어 안돼! 박서준은 이목구비도 있는 듯 없는 듯해가지고 울 애기보다 못 생겼어!" 그는 그러다 욕먹는다며 남들 앞에선 절대 그렇게 얘기하지 말라고 했지만
진심이었다. 내가 그에게 반한 것도 실은 그의 얼굴 때문이었으니까.
그는 사자 상(相)이다. 영화 <사자>가 아닌, 동물 사자. 예전부터 사자상의 남자 연예인을 좋아했지만, 현실(?)에선 만나본 적이 없었던 나는 그를 보자마자 그 외모에 반했다. 아니, 실은 만나기도 전부터 사진을 보고 바로 느낌이 빡! 왔다.
"드디어 내가 사자상의 남자를 만나는구나!" 실제로 만난 그의 얼굴은 사진 그대로였고, 우린 비슷한 점도 많고 성격도 잘 맞아 사귀게 되었다. 얼굴은 내 이상형이지만 성격이 안 맞았다면? 글쎄, 처음엔 좀 참았겠지만 지금도 만나고 있을진 모르겠다.
주변 사람에게도, 그에게도 이런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누가 "잘 만나고 있어? 좋아?"라고 물으면 "응, 좋아. 특히 얼굴이 넘 맘에 들어."라고 천진하게 답 하기도 하고, 가끔 그의 얼굴에 뾰루지가 나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아고, 얼굴에 그런 게 나면 어떡해. 나는 애기 얼굴 보고 만나는 건데~"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유전인가?"
엄마의 핸드폰엔 아빠가 '완잘똑내남'이라고 저장되어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우리 세 자매와 아빠의 이름을 다 엄마식의 줄임말로 핸드폰에 저장해두었는데, 완잘똑내남은 다름 아닌 '완전 잘생기고 똑똑한 내 남자'를 뜻한다.
믿거나 말거나. 엄마 눈엔 여전히 아빠가 잘 생겨 보이고, 아빠 눈엔 엄마가 여전히 귀여워 보이나 보다. 아빠는 가끔 술기운을 빌려 엄마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엄마 진짜 귀엽지 않냐? 아빠는 아직도 엄마가 그렇게 귀여워." 낼모레 마흔 번째 결혼기념일이 다가오는데도 아직 부모님의 애정전선에 이상이 없어 다행이지만, 한편으론 '엄마도 참 얼빠구나.'란 생각이 든다.
유전의 힘이 참 무섭다. 핸드폰에 그를 그냥 이름 석자로 저장해놨는데 나도 뭔가 만들어야 되나? 그런데 도무지 '완잘똑내남' 같은 신박한 아이디어는 떠오르질 않는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지만 아빠에 대한 엄마의 사랑은 자식도 이길 수 없는 것 같다.
*. 얼빠 : 특정 운동선수나 연예인 따위를 좋아할 때 그의 능력과는 별개로 외모만을 보고 좋아하는 팬을 이르는 말 (출처 : 네이버 오픈사전)
*. 표지 사진 : https://unsplash.com/@hefti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