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전편 <사랑의 부등식>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회식이 일찍 끝나면 응급실에 가보자던 그는 결국 회식을 마치고 10시 반에야 집에 도착했다. 그동안 '이제 1차 끝나서 나왔어~', '집에 도착했다. 팔은 좀 괜찮아?' 등의 카톡이 왔지만, 미리보기로 몰래 읽곤 자는 척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다음 날이 되자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와 같은 아침인사 - 굿모닝 - 를 건넸지만, 엉켰던 마음은 풀리지 않았고 머리는 우리 관계의 시작과 끝을 도돌이표로 재생했다. 모르는 척 자꾸 보내는 카톡엔 사사로운 감정 없이 정보만 담아 보냈다. '응, 밥 먹었어.'
오후가 되자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었던 그가 화해의 제스처를 보였다. '이따 저녁에 맛있는 거 먹을까?' 아직 마음이 풀리지 않았던 난 단답으로 일관했다. '아니.'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말을 거는 그의 끈기를 배반하기 위해선 터놓고 얘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퇴근 후 그와 두어 걸음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섰다.
나 : 내가 아파서 응급실에 갈 정도라고 생각하면서, 회식이 다 끝나면 가자는 게 말이 돼?
그 : 그렇게 아픈 건 아니었잖아, 완전히 넘어진 것도 아니고. 근데 애기 목소리가 너무 안 좋아서 그렇게 말해버린 거야.
그랬다. 처음부터 응급실에 갈 생각은 1도 없었다. 순간 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달콤한 말을 던진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발목을 붙잡은 현실과 타협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가 돼버렸다. 내게 위로가 필요했단 걸 알고 내가 듣고 싶을 만한 말을 한 것이라면 좀 더 완벽하게(?) 해야 했다. 내가 원했던 말은 '회식 끝나면 갈게'가 아니라 '지금 갈게'였지만, 그렇다고 진짜 오길 바란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러지 말고 그냥 바로 원하는 걸 말해주면 안 되냐고 했지만 난 쉽게 그러마고 할 수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아픈 건 아니지만 그냥 '지금 갈게'라고 말해줘."라고 할 수 있겠는가! 콩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주길 바랬다. 그게 바로 사랑이라고 믿었으니까.
얼마간 침묵이 흘렀다. 뭐라 더 말해야 할지 몰랐고 두 발이 땅에 붙은 듯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 그가 말했다. "이리 와서 더 얘기하면 안 돼? 응?"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드니 그가 짙은 눈썹을 팔(八) 자로 찌푸린 채 비에 젖은 강아지 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입꼬리가 움찔움찔하더니 결국 웃음이 터져 나왔다. 참아보려 했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언제나 그렇다. '만나면 잔뜩 화를 내야지!', '뭐라고 막 쏘아붙여야지!'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의 얼굴을 보면 웃음이 난다. 그는 그 틈에 미안하다며 나를 달래주고 그렇게 어영부영 화가 풀려버린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는 울다가 웃다가 하는 나를 꼭 안아줬고 우린 다시 시작도, 끝도 아닌 중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왜 그럴까? 왜 그의 얼굴을 마주하면 이유 없이 웃음이 나는 걸까? 어쩌면 말하지 않아도 아는 관심법이 아니라 그저 바라만 봐도 웃음이 나는 마법, 그게 바로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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