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hl Oct 29. 2019

사랑의 부등식

무조건 >>>>>지


비가 오던 어느 날이었다. 회사야 지하철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고, 일단 들어가면 퇴근  나올 일이 없으니 크게 신경  건 아니었다.


그러다 회사 셔틀로 물건을 전달할 일이 생겼고, 한번 놓치면 삼십 분을 기다려야 해 리퍼를 신은 채 서둘러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저 멀리 평소와 같이 주차된 검은 벤과 그 옆에 앉있는 기사 아저씨가 보였.


잰걸음으로  물건이 든 봉투 건네려는데...!  몸이 뒤로 휘청~했다. 


다행히 아저씨가 바로 일어나 오른팔을 잡아주셨고, 나도 급히 왼로 바닥을 짚어 완전히 넘어지진 않았다. 급작스런 상황에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보니 비가 샜는지 발치에 조그마한 물 웅덩이가 있었다. 슬리퍼를 신은 탓에 미끄러움이 배가 고, 하마터면 그대로 자빠져 머리가 크게 다쳤을지도 몰랐을 거라 생각하니 아찔했다. 


아저씨도 나만큼이나 놀라셨는지 옆에서 재차 괜찮냐고 물으셨다. 괜찮다며 괜스레 크게 웃어 보이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는데 왼쪽 팔이 아팠다. 온몸을 지탱하느라 무리가 갔는지 목부터 팔꿈치까지 저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심한 건 아니었지만,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몸 상해가며 일하고 있나-싶 우울해다. 


징징거리고 싶은 마음에 그살짝 오버해 카톡을 보냈다. "방금 물에 미끄러져서 넘어졌어ㅠ" 아직 사무실에 있을 그에게서 바로 전화가 왔다. 많이 다쳤냐며 걱정하는 목소리에 그런 건 아니지만 아프다며 한껏 약한 척을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그의 답변에 달달하던 멜로는 순 씁쓸한 스릴러바뀌었다. "아고, 얼른 집에 가서 쉬어유~ 나 회식 빨리 끝나면 같이 응급실 가보자~"


... 응? 이게 무슨 말인가 방귀인가. 회식이 끝.나.면. 응급실에 가자고? 여자 친구가 넘어져서 아프다는데 응급실에 가자면서 회식  참석해야겠다는 건가? 응급실은 어딜 들렀다 가는 데가 아니란 말이다. '응급'의 뜻도 모르는 건가!


이미지를 설명해보시오!


순간 어이가 없고 화가 나서 대충 얼버무리고 통화를 끝냈다. 그가 회식에 불참하고 바로 달려와야 할 정도로 다친 건 아니었만, 그래도 그렇지 응급실에 가긴 가는데 회식이 끝나면 가자니. 가 잘 못되었다. 응급실과 회식 사이 놓인 부등호 방향이 상했다.




*. <콩떡같이 말했는데 찰떡같이 웃음이 나는 이유>에 이어집니다!

*. 표지 사진 : https://unsplash.com/@roman_lazygeek

이전 15화 겨드랑이에 손 넣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