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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 Oct 14. 2020

구두가 왜 거기서 나와?

싱크대 밑에서 구두를 발견했다


퇴근한 남편이 커다란 백팩에서 앙증맞은 상자를 꺼냈다. 조각 케이크였다. "웬일이야?" 물으니 나보다 놀란 표정으로 남편이 말했다. "오늘 우리 혼인신고 1주년 되는 날이잖아!"


결혼기념일도 아니고 혼인신고일?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가 자취하던 집을 먼저 빼느라 혼인신고를 하고 결혼식 전부터 같이 산 게 일 년이 다 되었단 뜻이었다. 정신없이 치른 결혼식이 거짓말 조금 보태 지난주 같은데 벌써 일 년이라니. 



이상하게 결혼식 직후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꿈을 자주 꿨다. 처음 건 이제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가벼운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두 번째 꿈은 더 생생하고 훨씬 끔찍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배경이었는데, 내가 부엌으로 걸어가고 있었고 싱크대 하부장을 열자 거기에 수많은 여자 구두가 켜켜이 쌓여있었다. 모두 내 것이 아니었고,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내가 아는 어떤 여자가 옆에 서 있었다. 아마 그 구두의 주인이었던 것 같다. 지인과 바람을 피우다니!


화가 나 구두 무덤에서 하나를 집어 들고 남편에게 갔다. 큼직한 빨간 꽃무늬가 듬성듬성 그려진 초록색 구두였다. 대각선 방향으로 멀찍이 있던 그는 발이 땅에 붙은 듯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고, 나는 오른손에 든 구두로 그의 뺨을 세게 쳤다.


그는 이내 무릎을 꿇고 울며불며 어쩔 수 없었다, 한 번뿐이었다는 말을 변명이랍시고 해댔지만 나는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배신감과 억울함이 뒤섞인 비참한 감정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고 분에 겨워 씩씩 거리다 잠에서 깼다.


깨서도 꿈에서의 감정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 자식 어딨어?! 하고 두리번거리는데,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에 트렁크 바람으로 쪼그려 자고 있는 그가 보였다. 픽 웃음이 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화가 가라앉고 마음이 놓였다.


그를 깨우지 않으려 조용히 핸드폰을 들고 '남편 바람피우는 꿈'을 검색했다. 실제 꾼 꿈을 묘사하며 해몽을 부탁하는 글이 많았지만 내가 꾼 것과 같은 경우는 없었다. 더 찾아보니 '애인이나 남편이 바람을 피워 크게 싸운 상황'에 대한 해몽으로 무의식 중에 갖고 있는 남편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는 글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꿈은 잠재의식의 반영이라는 데 기인한 해석이었다.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나랴, 꿈을 땐 굴뚝에서 나는 자연스러운 연기로 생각하기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그렇다면 뭘까, 내 불만은?


연속 이틀째 야근으로 저녁 11시가 넘어 집에 들어온 그는 오늘도 친구와 술 한잔을 하느라 늦게 온다고 한다. 하지만 그게 불만인 건 아니다. 잔뜩 지쳐 집에 오면 겨우 웹툰만 보다 자지만, 어쨌든 아니다.





*. 사진 : Photo by Gavin Allanwood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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