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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 Jun 27. 2020

만질 수 있는 사랑의 순간들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증거 - 결혼 편

재택근무로 줄곧 집에 있는 요즘, 나보다 늦게 시작한 남편의 재택근무가 이주일만에 끝나버렸다. 덕분에 원래도 그보다 늦게 일어났던 난 예전보다 더 늦게 일어나게 되었다. 잠은 또 어찌나 잘 자는지, 보통은 그가 일어나고 씻고 나가는 중에도 전혀 깨지 않는다.


다만 가끔 무슨 일인지 일찍 눈이 떠질 때가 있다. 목걸이를 잃어버렸다거나(<있을 때 잘해> 편 참조), (지난밤에 준 사료가 모자랐는지) 고양이들이 유난히 운다던가, 춥다던가, 덥다던가... 뭐 그런 이유로. 하지만 그 날은 아무 이유 없이 눈이 떠졌다. 문틈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그가 보였고 오랜만에(지난 여섯 시간 동안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본 그의 모습이 마냥 반가웠다. 


자꾸 감기려는 눈을 끔뻑거리며 달려가 그를 배웅했다. "잘 다녀와." 그러자 그가 "오구, 울 애기는 자고 일어나도 예쁘네~"라며 양치질도 하지 않은 입에 뽀뽀를 했다. 머리도 엊그제 감고 안 감았는데.


물론 항상 좋을 순 없다. 가끔 그가 작은 실수를 할 때가 있다. 몇 주 전부터 얘기한 약속을 잊어버린다던가, 우울한 내 심정은 모르고 혼자 웹툰에 빠져있다던가, 그도 아니면 18만 원짜리 한정판 게임팩이 도착했다던가. 그러다 결코 편치 않은 내 표정을 발견하면 말없이 널따란 등을 내민다. 


"애기야 타, 업어줄게."


아무래도 그는 나를 정말 애기로 생각하는 것 같다. 어이가 없어 웃는 나를 보면서도 "오구, 그렇게 좋아요?"라고 하는 걸 보면. 하지만 그 뒤에서 괜히 목도 잡아당기고, 있는 힘껏 온 체중을 그에게 기대고 있다 보면 나름 벌을 준 것 같아 곧 기분이 좋아진다.


결혼을 하고 좋은 점 중 하나는 하루의 고단함을 깨끗이 씻은 후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잠들 수 있다는 것. 하루는 먼저 씻고 나와 침대에 엎드려 핸드폰을 하고 있는데 그가 뒤에서 기습공격을 해왔다. 순식간에 바지를 올리고 맨 엉덩이에 뽀뽀를 한 것이다! 납작해서 콤플렉스인 엉덩이를 귀엽다고 해주는 게 싫지만은 않지만 요즘엔 낌새를 느끼는 순간 바로 이렇게 말한다.


"나, 나 화장실 갔다 왔어!" 


무엇보다도 같이 살면서 느낄 수 있는 사랑의 포인트는 단연 음쓰, 음식물 쓰레기 처리가 아닐까. 식기세척기를 산 후로 한 번도 껴보지 않은 내 고무장갑을 끼고 열심히 배수구 청소를 하고 있는 걸 보면 그가 나를 정말 아낀다는 걸 깨닫게 된다. 고양이들 화장실 관리도 마찬가지. 언젠가부터 남편은 묵묵히 그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결혼식 전엔 한창 청첩장을 돌리느라 몇 년 만에 1차로 목살에 소주를 곁들이고 2차로 호프집까지 간 적이 있다. 역시 술이 너무 과했는지 새벽에 깨서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해야만 했다. 힘없이 침대로 돌아오니 그 부웅~하고 막 우르르 쾅쾅! 하는 소리를 다 들었을 텐데도 그는 '애기야, 아프지 마유~'라며 언제나처럼 나를 안아줬다.





*. 표지 사진 : Photo by Milan Popovic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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