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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 Jul 10. 2020

고양이의 눈

고양이와 나#3

얼마 전 시력 교정 수술을 알아보러 병원에 갔다. 그냥 살지 뭐- 괜한 부작용이 두려워 생각도 안 했던 일인데, 최근 렌즈만 꼈다하면 다음날 눈이 간지럽고 벌게져 결심하게 됐다. 겸사겸사 이젠 물에 들어갈 때 렌즈를 안 껴도 되니 어쩌면 잘 된 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미뤄뒀던 오픈워터 자격증도 따야지.


그나마 공장형이 아닌 곳으로 골랐는데도 병원 안은 대기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같이 간 남편과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내다 드디어 이름이 불렸다. 검사가 시작되었다. 말굽 모양으로 늘어선 기계 앞뒤로 등 없는 의자가 하나씩 놓여있었고, 검사를 해주시는 분과 짝을 맞춰 몇 번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니 끝이 났다.


1차 검사였다. 이후 병원 코디네이터에게 수술의 종류와 장단점을 들은 후 다시 검사를 진행했다. 산동제와 함께 마취제, 그리고 지금은 기억나질 않는 무시무시한 이름의 또 다른 약을 넣었다. 검사 결과는 좋았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내 눈은 제법 스펙이 좋았고, 원했던 라섹 수술을 할 수 있단 결과가 나왔다. 



기쁜 마음으로 대기실에 앉아 수납을 기다리다 뒷 주머니에 넣어두고 잊어버린 핸드폰을 켰다. 이상했다. 초점이 맞춰지지 않아 글자가 뿌옇게 보였다. 산동제 때문이었다. 산동제가 동공을 확장시켜 빛의 굴절 오차가 생긴 것이었다. 남편을 시켜 글자 크기를 가장 크게 설정한 후, 자연스레 핸드폰을 얼굴에서 먼 쪽으로 움직이니 어느 순간 글이 어렴풋하게 읽히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노안 체험이었다.


밖으로 나오자 눈이 너무 부셔 말 그대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잔뜩 커진 동공이 있는 대로 빛을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남편을 의지해 아예 눈을 감고, 때로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바닥만 보고 걸었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그래도 다시 갈아타지 않고 한 번에 갈 수 있단 말에 그 먼 길을 참았는데, 버스는 올 생각이 없었다. 기다리는 내내 눈이 부셔 도로를 등진 채 광고판만 쳐다보고 있었다. 지하철을 타느라 실내로 들어갔다면 눈뜨기가 훨씬 편했을 텐데... 


눈이 부신 것뿐인데도 온몸이 움츠러들었다. 내 것인 팔과 다리조차 바라볼 수 없어 움직이기가 조심스러웠다. 버스를 타자고 한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고양이의 동공은 그 크기가 자유자재다. 저녁엔 거의 눈 크기만큼 동공을 확대시키고, 낮엔 동공을 축소시켜 기다란 선 모양으로 만든다.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연상하는 바로 그 눈이다. 난 그럴 줄을 모르니 여전히 동공이 동글동글한 채로 햇빛에 무방비로 당하고만 있었다. 고양이가 되고 싶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오래전 약속한 집들이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남편과 급히 마트에 들러 사온 밀푀유나베와 초밥을 차려 친구들을 대접한 후, 와인을 챙겨 근처 친구 집으로 2차를 갔다. 냉장고에 있던 치즈와 먹다 남은 과자에 와인 한 병을 다 비우고 하룻밤 외박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날이 아직 밝았다. 거실에 앉아있는데도 중문 너머 베란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너무 밝게 느껴졌다.


어젯밤 친구들이 온다고 급하게 책장에 올려놓은 화분이 위태로워 보였다. "우리 이케아 갈까? 나 이제 핸드폰 글자는 잘 보여." 그러자 그가 말했다. "응? 안돼. 애기 아직도 동공이 커." "진짜?" 놀란 마음에 거울을 찾아 눈을 들여다봤다. 빠르게 움직이는 낚싯대를 보고 놀란 와니의 것처럼 커다란 동공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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