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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 Feb 24. 2019

신이시여, 어디서 무얼 하십니까?

영화 <사바하>를 보고...

※ 본 콘텐츠에는 영화 <사바하>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재하는 악마와 싸우는 가톨릭 사제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검은 사제들>을 봤던 날이 기억난다. 평소 천사와 악마 이야기를 판타지라는 장르로 묶어 해리포터나 왕좌의 게임처럼 좋아하던 나였기에, 주저 않고 곧장 극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곤 그날 저녁, 도시를 떠도는 악마가 '그르릉'거리다 우리 집까지 찾아올지도 모른단 생각에 잠을 설쳤다. 하얀 옷만 입었지 악마 못지않게 깡패 같은 천사와 악마에게 본인의 암을 옮겨버리는 혼혈 인간이 등장하는 <콘스탄틴>과 같은 영화를 기대했던 내게, <검은 사제들>은 조금 무서운 영화였다.


그 기억에 '검은 사제들 2'라고도 불리는 <사바하>를 보기가 조금 꺼려졌지만, '호러이기보다는 스릴러에 가깝다'는 어느 평을 보고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결과는? '그것'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낼 땐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어제는 방의 불을 모두 끄고도 꿀잠을 잤다.




극 중 해안 스님의 말에 따르면 불교의 '사바하'는 기독교의 '아멘'과 같은 단어다. 언뜻 보면 낯설게 느껴지지만, 그 음을 분절해보면 우리에게 낯익은 문구에서 비슷한 단어를 찾을 수 있다. '분신사바'. 어렸을 때 친구들과 손을 붙잡고 외쳤던 바로 그 주문에도 '사바'라는 말이 나온다.


분신  1. 하나의 주체에서 갈라져 나온 것 2. 부처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몸으로 나타남. 또는 그 몸.

사바하 : 원만한 성취로, 진언의 끝에 붙여 그 내용이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말.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분신사바'를 해석하는 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바'를 '사바하'의 줄임말로 생각하면, 분신사바는 대략 '중생을 위하여 이루어주소서'라는 뜻을 가지게 된다.


영화에선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 각자의 '사바하'를 외친다. 세속적인 박 목사는 사이비 종교 단체에 관한 자극적인 기사를 써 돈을 벌고자 하고, '그것' 때문에 계속 쫓기듯 이사를 다녀야 하는 데 지친 금화는 집을 떠나 서울로 가고 싶어 한다. 그리고 '사슴 동산'의 교주 김제석은 '불로장생'을 염원하며 청년들에게 어린 소녀들의 죽음을 사주한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SAVAHA : THE SIXTH FINGER>인데 여섯 개의 손가락은 극 중에서 신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감독이 밝힌 것처럼 '그것'과 김제석의 공통점으로 둘 간의 연결고리가 되기도 한다. 티베트의 대승인 네충텐파는 김제석에게 그의 고향인 영월에서 1999년도에 그의 강적이 태어날 것이라 예언하는데, 그때 금화가 쌍둥이 언니인 '그것'과 함께 태어나고 '그것'은 김제석과 같이 6개의 손가락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한 때 미륵불이라 불리던 김제석은 세상을 위해 할 일이 많다는 대의명분을 앞세운 채 욕망에 잠식되어 이 되고, 귀신으로 불리던 '그것'은 검은 것들을 털어내고 불(佛, 선)의 모습이 되어 나타난다. 선과 악이 이분법으로 나뉘지 않고, 인간의 욕망에 의해 선이 악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악이 선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김제석은 예언을 막기 위해 나한을 재촉해 '그것'을 없애려 하지만 역으로 나한에 의해 범인(凡人)과 같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이것이 존재하면 저것이 존재하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도 멸한다.


고 했던 네충텐파의 말처럼 이후 '그것'도 눈을 감는다. 어쩌면 김제석이 불사(不死)가 되는데 눈이 멀어 잊고 있었던 것을, '그것'은 알고도 쌍둥이 동생을 구하기 위해 자초한 게 아닐까.


(c) dahl


차가운 겨울 쏟아지는 눈발을, 총상을 입은 몸으로 다 받으며 나한은 "추워요..."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다. 아버지와 같은 이를 위해 죄 없는 소녀들을 제 손으로 죽이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던 그. 그러나 김제석이 신(神)도, 그를 사랑하는 이도 아니었음을 깨닫고 결국 김제석의 스승의 총에 맞아 사경을 헤맬동안... 신은 과연 어디에 있었는가?


아기 예수의 탄생 소식을 듣고 헤롯 왕이 베들레헴 일대의 두 살 이하의 유아를 모조리 학살할 동안, 김제석이 네충텐파의 예언을 듣고 강원도 영월의 99년생 소녀들을 한 명 씩 죽이는 동안... 신은 과연 어디에 있었는가?


세상엔 수많은 종교와 그들이 모시는 신이 있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리는 끔찍한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과연 그 신들은 다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그 모든 사건 사고도 다 신의 뜻인 걸까? 미처 우리 모두를 다 살피지는 못하는 걸까? 아니면 신이란 존재 자체가 없는 걸까?


신학교를 나온 목사의 신분이지만, 종교에 회의를 느끼는 박 목사의 말을 빌어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우리는 이렇게 저- 밑바닥 개미처럼 지지고 볶는데,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어디서 무얼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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