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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일기 Aug 05. 2016

1. 스무 살이 된다는 것

준비된 것도, 변한 것도 없지만 나는 이제 성인이라고 한다.

나는 20대다.



어릴 때 막연히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내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며, 세상엔 나쁜 놈들이 판을 칠 것이라고. 나는 그 재난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세상을 구해내는 영웅이 되는 것이지. 그럼그럼.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스무 살이 되는 순간 내 인생의 많은 것이 바뀌어 있을 것이란 착각 중의 착각을 제대로 한 것이라 이해하면 되겠다.     







내가 열아홉 살이었던 해의 12월 31일 11시 59분


휴대폰의 시계가 58분에서 59분으로 넘어가는 순간 조심스럽게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59, 58, 57… 입으로는 카운트다운을 하면서 손으로는 열심히 글을 썼다.



"이제 내 인생의 십대가 끝난다, 이십 대의 시작이다.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다!"



그렇게 쓰고 시계를 보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뀌었다. 휴대폰 속의 모든 세상이. 해가 바뀌었고, 달이 바뀌었고, 날짜가 바뀌었고, 요일이 바뀌었고, 새해를 기념하는 폭죽이 펑펑 터졌다. 휴대폰 배경화면 속에서. 디지털 세상은 이렇게 바뀌었다.     


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바뀐 게 하나도 없었다. 그저 12월 31일 11시 59분 59초에서 1초가 더 지난 오늘이 다가온 것뿐이었다. 


아니, 아니지. 11시 59분 59.9999999…초에서 0.000001초가 더 지난…. 아. 이것도 아니다. 적절하지 않아. 그냥, 아주 자연스럽게, 순간의 차이로 오늘은 어제가 되었고 내일이 오늘이 되었다고 하자. 말이야 어떻든지 간에 결론은 아날로그적인 세상의 빌어먹을 연속성이 내 로망을 다 망쳐 놓았다는 것이다.      






아, 그래. 나는 스무 살이 되었구나. 그렇게 조용히, 새해를 맞이했다. 그뿐이었다. 누구나 되는 스무 살이었기에 누구도 내가 스무 살이 되었음을 크게 축하해 주지 않았다. 나이 먹는 게 뭐 축하할 일이겠느냐마는, 그래도 스무 살은 축하 받고 싶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려오던 순간이 다가오지 않았던가.      



"나는 어른이 되면 말이야," 

"우리 스무 살이 되면 말이야,"     



아이들이 그리는 미래는 서른 살도, 마흔 살도 아닌 스무 살의 것이 대부분이다. 스물. 더 이상 내가 미성년자가 아니게 되는 시기. 마흔 살은 너무 멀고, 서른 살도 가까운 편은 아냐. 스무 살이 딱 적당해. 그래, 그 시기가 되면 나는 뭐든 할 수 있을 거야. 성인이라는 명찰이 아이들 머릿속의 스무 살을 아름답고 멋있게 포장하고 있었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스무 살의 자기 자신은 어디 영화의 히어로쯤 되는 능력치를 가진다.     






여기서 참 웃긴 것이 있다면, 모든 것은 아날로그적인 연속성을 가지고 변했지만 내 위치의 변화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제의 나는 미성년자, 오늘의 나는 성인. 디지털 세계가 바뀌듯 내 위치는 그렇게 바뀌어 있었다.     


달라진 게 없는 나에게 다른 행동들을 요구한다. 나는 대체 뭘 해야 하지? 뭘 선택해야 하고, 어떤 것을 해내야 하는 거야? 수능과 대학만을 바라보고 여기까지 왔다. 대학에 가면 뭐든 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여기까지 왔는데, 길이 너무 넓고 많다. 어디로 가야 하지?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성인들이 사회에 던져졌다.     


청춘이라더니 푸르른 봄날은커녕 도로 겨울이 찾아온 기분이다.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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