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에 잠 못 드는 밤

by 정다훈

그냥 갑자기 달밤에 걷고 싶은 날이 있다. 해가 떠 있을 때 하는 산책과는 전혀 다른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낮의 공기가 나에게 포근하고 희망 같은 느낌을 준다면 밤은 시원함과 위로를 전해주는 기분이 든다. 볼 수 없는 해의 온기를 느끼는 것보다 은은한 빛을 내뿜는 달을 보며 걷는 것은 이상하게 금방 감성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버려서 많은 생각에 빠지게 한다. 갑자기 떠오른 고등학교 동창 친구 생각에 전화도 해보고 지나온 추억이 있는 핸드폰 앨범도 뒤져보고 괜스레 주변 사람들 인스타를 한 번씩 들리며 평소라면 절대 안 할 행동을 하나 둘 하고 있던 중에 익숙한 이름 하나를 보고 걸음도 생각도 멈추고 가만히 있었다. 어쩐지 갑자기 달을 보고 걷고 싶더라니 은연중에 네 생각이 나서 그랬나 보다.


딱히 너와 함께 달을 보며 걸은 적은 없었지만 이상하게 너를 떠나보낸 후에 달만 보면 네 생각이 나서 갑자기 기분이 뭉그러 지는 감정을 느꼈다. 너는 나를 지웠고, 너는 내게 번졌다. 실제로 그랬을지는 모르겠다마는 적어도 내가 너를 지우지 못할 자국으로 마음에 남겨두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일 테다. 역시 못하던 짓을 하는 시간이라서 그런가 조금 시간이 흘렀지만 너에게 연락을 건넬까 했다마는 아무리 그래도 그것만은 차마 못할 짓이라 생각해서 참아냈다. 너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았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아마 그래도 너도 나를 좋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할 사랑을 했었을 것이기에, 그리고 나에게도 너무도 소중했던 시간들과 감정들이 고스란히 보물상자에 넣은 것처럼, 하나의 귀한 보석처럼 보관하고 있기에 꺼내 보려다 실수로 깨트릴 까 봐 꺼내볼 용기조차 못 내는 나다. 사랑한다고 말했음에도 한 번을 붙잡지 못하는 지질한 내가 너는 답답했을까 미웠을까 그것도 아니면 차라리 후련했을까. 그 와중에도 너를 위해서라면 내가 떠나는 것이 맞겠지 하며 또 스스로를 탓하며 배려라며 끝까지 감정을 내세우지 못했던 나는 너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어떤 생각으로 떠나갔을까.


오늘은 무슨 일인지 유독 달빛이 밝아서 가로등이 없는 곳인데도 환하게 모든 것이 보인다. 그래서인지 내 옆 빈자리도 더욱 크게 느껴지는 밤이다. 마냥 이 밑에서 네 생각에 잠겨서 보내기엔 아까운 날이라는 기분이 들어 그냥 다시 발걸음을 옮겼는데 또 나는 웃긴 자식인 게 네가 좋아한다고 말하던 장소로 자연스레 발걸음이 향했다. 김유신이 자신이 취한 사이에 여자의 집으로 자신을 옮긴 것에 분노에 말의 목을 친 이유가 이런 것일까, 왜 이곳을 스스로 찾아왔는지 모르겠어서 내 발을 미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곳은 네가 좋아할 이유가 충분하고 자랑하고 싶을 정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곳이라 썩 불만스럽지는 않았다. 여기가 자신만의 비밀의 장소라고 아름답지 않냐며 자랑하던 때에 나는 이곳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다. 그때 내 눈에 달빛은 오직 너만 비추고 있어서. 그 달빛이 이제 이 경관을 모두 비춰주니 얼마나 더 아름다운가. 갑자기 울린 알림에 정신이 번쩍 들어 시계를 보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며 일어서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 또다시 모든 달빛을 앗아가 주변의 다른 아무것도 안 보이게 하는 사람을 마주쳤다.


멍하니 있던 그때, 네 눈물에 달빛이 비쳐 내 눈이 놀라서 한 달음에 너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이제와 내가 우는 널 함부로 달랠 수도 없는 노릇에 손도 발도 눈도 갈 길을 잃어 방황할 때, 귀는 정직하게 일했다. 1년이란 시간을 기다렸는데도 자신을 배려한다 하면서 끝까지 이기적으로 굴더니, 이제 와서 이런 곳에 찾아와서 다시 자신을 흔들리게 하나며 정말 밉다고 하는 네 모습에 내 모든 감각이 갈 길을 되찾았다.


오늘은 달빛이 유난히 밝았다. 그리고 그 빛은 결국 내 길을 다시 찾아줬다. 너를 못 잊어 잠 못 들게 하는 괜히 감성을 돋우던 달이 오늘만큼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아 그건 달이 아니라 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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